뇌와 통신하라… 꽂는 칩보다 효과적인 뇌 스캔, 완성 향해 박차[이진형의 뇌, 우리 속의 우주]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7월 9일 2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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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회로와 통신하는 방법
영화 ‘매트릭스’의 칩 꽂기… 뉴럴링크의 칩과 유사한 개념
‘아바타’처럼 뇌 스캔하는 기술… 뇌질환 진단과 치료에 이상적
뇌 회로 작동법 밝혀야 도약 가능

영화 ‘아바타’
영화 ‘아바타’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는 사람의 오감, 즉,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의 신호를 디지털 가상현실 신호로 대체함으로써 사람들이 게임 속을 현실처럼 느끼며 살아가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 ‘매트릭스’에서는 뇌에 직접 칩을 꽂아 뇌와 통신할 수 있게 함으로써 인간이 가상현실인 매트릭스를 현실처럼 느끼게 하는 기술이 나온다. 영화 ‘아바타’에서는 인간 뇌를 스캔한 내용을 아바타의 뇌 신호와 동기화시켜 아바타를 내 몸처럼 조종하는 능력을 보여준다. 이 영화들은 뇌와 통신할 수 있는 세 가지 방법을 보여준다.》




이진형 미국 스탠퍼드대 생명공학과 교수
이진형 미국 스탠퍼드대 생명공학과 교수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나오는 방식은 우리의 뇌가 원래 가지고 있는 통신 시스템, 즉 오감을 통해서 뇌와 통신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이미 뇌가 가지고 있는 입력 시스템을 사용하기 때문에 뇌 회로의 동작법을 모르고도 사용이 가능하다는 큰 장점이 있다.

우리는 뇌 안에서 오감으로 받아들인 신호들이 어떻게 해석되는지는 잘 모르지만 그 신호가 어떻게 쓰이는지는 알고 있다. 따라서, 이를 이용해서 가상현실을 만드는 일은 뇌의 동작에 대한 이해 없이도 가능하다. 컴퓨터로 예를 들자면 그 동작 원리를 몰라도 카메라, 키보드, USB 포트 등을 사용할 수 있는 것과 같다. 하지만 이 방법의 치명적인 단점은 뇌가 고장 났을 때 고치는 용도로 사용하기에는 큰 제약이 있다는 것이다. 다시 컴퓨터의 예를 들면, 키보드와 USB 포트만 사용해서 고장 난 컴퓨터를 고치는 데 한계가 있는 것과 같다.

매트릭스에서 보여주는 방법은 뇌에 직접 칩을 꽂는 것이다. 원하는 세포의 위치에서 나오는 신경 세포 단위의 신호를 직접 읽고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두개골을 열고 직접 칩을 박는 아주 침습적인 방법이라는 게 단점이다.

또한, 신호를 읽고 쓰려면 뇌의 동작 알고리즘을 정확히 이해해야만 한다는 게 또 다른 문제다. 현재 의료 현장에서도 전자약이라는 이름으로 뇌에 직접 칩을 꽂아서 신호를 주는 방법이 뇌전증이나 파킨슨병을 치료하는 데 사용된다. 완치법은 아니지만, 뇌에 신호를 줌으로써 뇌전증 발작을 막거나 파킨슨으로 인한 동작 어려움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들은 뇌 동작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여러 시도를 통해 알아낸 실험적 결과물이기 때문에 효과에도 상당히 큰 제약이 따른다.

여러 연구실에서 다양한 칩을 개발하고 있다. 잘 알려진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도 이런 칩을 만든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현재는 뇌의 알고리즘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칩을 만든다고 해서 매트릭스처럼 가상현실을 심어주거나 뇌에 헬리콥터 조종법을 직접 다운로드해서 트리니티가 몇 초 만에 헬리콥터를 조종하게 되는 것과 같은 학습은 불가능하다. 납땜기가 있어도 컴퓨터를 이해하지 못하면 어디를 어떻게 납땜해야 하는지 알 수 없고, USB 포트가 있어도 어떤 프로그램을 깔아야 하는지 알 수 없는 것과 같다.

아바타에 나오는 방법은 비(非)침습적으로 직접 뇌의 신호를 읽고 쓰는 방법이다. 이렇게 직접 뇌의 신호를 비침습적으로 읽고 쓰는 방법이 가장 이상적이다. 하지만 뇌는 두개골로 보호되어 있기에 침습적인 방법보다 한 차원 더 높은 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기술이라 할 수 있다. 직접 칩을 꽂는 기술을 유선 통신에 비유한다면 이 방법은 무선 통신에 비유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이 뇌 질환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라 볼 수 있다.

영화는 우리의 상상력을 화면에 보여주는 우리 뇌 창의력의 산물이다. 그런데 이처럼 영화에 나오는 모습과 우리의 현실에는 얼마나 큰 간극이 존재할까? 뇌 질환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은 공상 과학 영화 속 즉각적인 학습, 아바타 조종 같은 미래가 아직 먼일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려준다. 그 이유는 우리가 아직 뇌 회로의 동작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뇌는 대략 1000억 개의 신경 세포로 이루어져 있으며(이는 전 세계 인구의 10배가 넘는 숫자다), 그 신경 세포들이 100조 개의 연결점을 통해 ‘회로’를 이루고 있다. ‘회로’의 사전적 의미는 전기적 신호가 움직이는 연결된 망이라는 뜻이다. 이 정도의 사실을 알아내는 데만 해도 엄청나게 많은 연구가 필요했고, 아직도 신경 세포의 종류를 확인하는 과정이 많은 연구 프로젝트를 통해 진행되고 있다.

그만큼 뇌 회로의 동작을 밝히는 건 매우 어려운 문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이해가 아주 멀리 있지도 않다. 연구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많은 발견이 한꺼번에 이루어지고 이해되지 않던 퍼즐이 순식간에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는 “잠을 많이 자면 뇌 건강에 좋다” 정도의 지식이 우리의 뇌에 대한 이해의 전부였다. 그러나 이제 “잠을 자는 동안 뇌가 노폐물을 방출하고 뇌 신경 세포들의 연결망이 정리된다”까지 나아갔고, “뇌 회로가 어떠한 통신을 통해서 수면 상태를 유지한다”라고 하는 구체적 이해로 이어지고 있다. 공상 과학이 보여주는 미래, ‘우리 속의 우주’ 뇌를 이해하는 날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뇌 질환을 치료함은 물론이고 밤새워 공부하지 않고도 많은 것을 순식간에 배울 수 있는 날도 기대해 본다.


이진형 미국 스탠퍼드대 생명공학과 교수


#뇌#회로#통신#칩 꽂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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