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우경임]물에 타서 쓰는 피? 인공 혈액 개발 각축전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7월 9일 23시 18분



미국 국방부 산하 연구개발 기관인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실온에서 보관 가능한 분말 형태의 인공 혈액을 개발하는 데 지난해 4600만 달러(약 634억 원)를 지원했다. 군사용 신기술을 연구하는 DARPA가 인공 혈액에 투자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전쟁뿐만 아니라 대형 재난으로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하는 사태를 대비해 혈액의 안정적인 보급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2022년 코로나19가 한창일 당시 혈액 보유량이 급감해 국가 혈액 위기를 선포한 적이 있다.

▷DARPA가 투자한 프로젝트는 산소를 구석구석 나르는 적혈구 속 헤모글로빈 대체재를 만드는 것이다. ‘에리스로머(Erythromer)’라고 하는데 혈액에서 헤모글로빈을 추출해 지질 막을 씌운 입자다. 혈액은 최장 42일간 냉장 보관이 가능하지만, 동결 건조된 분말인 에리스로머는 2년간 실온 보관이 가능하다. 냉장 시스템이 없어도 되고, 식염수와 섞어 쓰므로 보관과 배달이 용이하다. 혈액형과 상관없이 투여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일본에서도 최근 에리스로머와 같은 원리의 인공 혈액이 개발됐다. 나라현립 의과대 교수팀은 유통기한이 지나 버려진 혈액에서 헤모글로빈을 추출한 뒤 역시 지질 막으로 씌운 입자를 만들었다. 폐혈액을 활용하고 혈액 보관 기간이 15∼16배 늘어난다는 점에서 혈액 부족을 해결할 획기적인 연구로 평가받는다.

▷헤모글로빈을 대체한 인공 혈액은 산소 공급만 가능한 ‘반쪽’ 혈액이다. 몸속에서 진짜 혈액이 충분히 생성될 때까지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다. 인공 장기보다 인공 혈액 개발이 뒤처진 것은 혈액의 구성이 그만큼 복잡해서다. 혈액의 절반은 액체인 혈장, 절반은 고체인 혈소판 적혈구 백혈구 등으로 이뤄져 있다. 그래서 진짜 혈액을 모방한 인공 혈액은 추출한 줄기세포로 적혈구를 배양하는 방법으로 만들어진다. 2022년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가 이 방법으로 건강한 성인 2명에게 찻숟가락 정도의 수혈에 성공한 적이 있다.

▷선진국은 저출산 고령화로, 저개발국은 헌혈 인프라 부족으로 전 세계 국가의 60%가 만성적으로 혈액 공급에 차질을 빚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인공 혈액 연구는 임상실험 전 단계로 10년 이내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헤모글로빈의 잠재적인 독성을 해결했는지가 상용화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한다. 지난해 범부처 ‘세포 기반 인공 혈액 제조 사업’이 출범하는 등 국내서도 인공 혈액 개발에 시동이 걸렸다. 인공 혈액 개발에 성공한다면 장기 이식용 혈액, 항암제용 혈액 등 맞춤형 혈액이나 희귀 혈액 생산까지도 가능해진다. 보건 안보로 접근해도, 인공 혈액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인공#혈액#개발#각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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