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 대신 걸려 ‘짐’ 된 해초… 펴서 말리니 ‘금’ 같은 김으로[권대영의 K푸드 인문학]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7월 11일 12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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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코리아
지난번 칼럼에서 김밥 김에 대하여 간단히 소개한 바 있다. 이에 많은 분이 김의 역사에 대하여도 문의해와 김의 역사를 앞당겨 이야기하고자 한다. ‘김’은 소위 바다에서 나는 ‘풀’이라고 말하는 해조류로 미역, 다시마, 우뭇가사리, 파래 등과 같이 우리나라에서는 오랫동안 먹어온 음식이다. 신석기 시대, 부산 범방동 수가리 패총을 보면 ‘고운띠 무륵’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 민족은 적어도 지금부터 5000~6000년 전부터 해조류를 돌이나 바위에서 뜯어 먹었음을 알 수 있다.

권대영 한식 인문학자
권대영 한식 인문학자
삼국시대의 기록인 ‘삼국지위지동이전’과 ‘본초습유’ 기록에 이미 바닷속으로 들어가 해조류를 떼어낸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우리 민족은 김이나 미역 등 해조류를 많이 뜯어 먹었음을 알 수 있다. 한식의 특징상 반찬이 있어야 밥을 먹었기에 우리 조상들은 서양에서 거들떠보지도 않고 버리는 육지의 풀이나 바다의 풀을 어떻게든 맛있게 만드는 지혜를 키운 것이다. 육지의 풀을 양념해서 김치로 만든 것처럼 바다의 풀인 김과 파래 등도 뜯어다가 맛있게 먹었을 것이라 추론할 수 있다.

논이나 밭에 잡풀이 많듯이, 바닷가에서도 고기는 잡히지 않고 배나 어망에 바닷풀이 올라오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풀을 ‘김’이라고 했다. 정말 하찮은 존재다. ‘ㄱ’의 구개음화가 많이 진행된 남부지방에서는 일부 ‘짐’이라고 불렀다. 어쨌든 농부들이나 어부들은 걸리적거리는 김을 없애야 했다. 이를 논밭에서는 ‘김을 맨다’라고 하고 바다에서는 ‘김을 뗀다’, ‘맨다’고 하였다. ‘김’의 이름은 이 순우리말 ‘김’에서 왔다.

몇몇 사람들이 김이라는 말의 어원이 우리말이 아닌 한자어에서 왔다고 주장한다. 이는 아주 비과학적이며 진실이 아니다. 미역, 파래, 다시마, 우뭇가사리가 다 순우리말인데 어찌 ‘김’만 한자에서 왔을 것이라고 보는가? 단순히 생각해도 그럴 리가 없다. 그런데도 배운 부류의 사람들이 한자어를 들이대고 우리말의 뿌리라고 이야기하면 일반인들은 의외로 진짜인 줄 쉽게 믿는다. 음식 이름에서는 특히 심하다. 훗날 우리글이 없었기 때문에 이 김을 한자로 표기할 때 주로 ‘해의(海衣)’로 표기하고 정약전 같은 사람은 ‘김’의 소리를 빌어 ‘짐(朕)’이라고 기록하였을 뿐이다.

이러한 김은 반찬으로 매우 훌륭하였다. 물론 처음에는 김을 건져서 바로 무쳐 반찬(김자반)으로 먹었겠지만, 김을 건지거나 뜯어 돌에 던져 넓적하게 펴서 말리면, 김에는 여러 다당류 물질이 있기에 매우 부드럽고 끊어지지 않은 훌륭한 쌈종이가 된다는 걸 곧 알게 됐다. 여수 앞바다 금오도에는 오래전부터 김을 말렸다는 넓적한 바위가 있다. 우리 같이 밥과 반찬을 싸서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문화가 발달한 민족에게 김은 매우 훌륭한 쌈 재료이다. 중국의 밀가루로 만든 만두 종이, 베트남의 쌀로 만든 쌀 종이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 ‘쌈 문화’가 발전하여 ‘말이 문화’인 K-푸드 김밥이 탄생한 것이다. 일본은 김을 쌈 재료로 먹는 것보다, 밥이나 스시에 얹어 먹는 문화다. 그런 두꺼운 김을 써서는 김밥 문화가 탄생할 수 없다. 이제는 정말 김이 금(金)이 된 것이다.

#김#해조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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