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행정-전문가 협력 신통기획, 정비사업 새 길 열길[기고/남진]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7월 11일 22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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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진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한국도시부동산학회장
남진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한국도시부동산학회장

우리는 지금 거대한 변화의 물결을 마주하고 있다. 양적 공급과 효율성을 추구하던 성장시대에서 ‘저성장·성숙시대’로 변화하면서, 노후한 주택과 도시 인프라를 정비해 시민 삶과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고 도시 경쟁력을 확보하는 정비사업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정비사업은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 사업구조마저 복잡다단하기 때문에 도시계획과 주택정책 분야의 ‘복잡계(Complex System)’라고 할 수 있다. 서울시의 대표 정책인 ‘신속통합기획’은 현장의 다양한 문제를 해소하고 공공성과 영리성으로만 대변되던 낡은 구도에서 벗어나 주민이 공감할 수 있는 정비사업의 새로운 길을 찾는다는 면에서 주목받고 있다. 정비계획 수립 단계부터 시, 자치구, 주민이 서로 의견을 모아가며 진행하는 방식이다.

서울은 1인당 소득 4만 달러(약 5520만 원)를 돌파한 경제 선진 도시다. 그러나 강북의 재개발 지역을 보면 소득 1000∼2000달러 시대의 1970, 80년대 주거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세계 주요 도시인 서울의 주민들이 이처럼 여전히 낙후된 주거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안전과 보건이 위협받는 열악한 주거환경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서울엔 아직도 미아동의 고도지구 지역, 창신동의 구릉지, 가리봉의 벌집촌 등 공공의 손길이 절실한 곳이 많다. 그간 소외됐던 지역에 유연한 도시계획의 적용을 통해 합리적인 계획을 마련하고, 지속가능한 주거환경을 만들기 위해 기반시설을 확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소방차도 들어가기 어려운 저층 주거지에서 주거 기본권마저 위협받고 있는 주민들에게 빠른 재개발은 한 줄기 희망이자 숙원을 이룰 수 있는 동아줄이 된다. 신속통합기획은 그간 정비사업의 걸림돌이었던 사업 주체 간의 갈등에서도 새로운 해법을 제시한다. 사업 초기 단계부터 행정, 전문가, 주민이 함께 논의해 계획안을 만들기 때문이다. 공공과 민간이 각각 관리 주체와 객체가 되는 수직적인 구조가 아닌, 상호 협력하는 수평적인 파트너십이 신속통합기획의 핵심이다.

신속통합기획에서 공공성은 민간(조합)과 함께 만들어 간다는 공동의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공공과 민간은 정비사업이 실현되지 않으면 주거환경 개선, 정비기반시설 및 공공임대주택의 공급 등 정비사업의 공공성 자체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에 공감하고, 공공성과 사업성의 균형을 통해 실현 가능한 대안을 찾는다.

다만 이러한 대안을 찾기 위한 작업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한 대상지의 신속통합기획 수립 과정에서 수십 차례 회의를 통해 전문가, 주민, 행정의 공감대를 이끌어 낸다. 현재 서울 시내 129곳에서 신속통합기획이 진행되고 있다.

서울시의 도시계획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면서 대상지에 대해 기존엔 최대 반나절 정도 고민해서 평면적으로 정비계획을 결정할 때가 많았다. 그런데 신속통합기획을 하면서는 정비사업 대상지를 오랫동안 입체적이고 다각적인 시각으로 고민해 사업 실현이 가능한 계획을 마련한다. 기존에 가지 않았던 새로운 시대, 성숙시대에 맞는 도시계획과 정비사업의 길을 열고 있다고 확신한다. 서울시의 신속통합기획이 시장이 바뀌면 사라지는 일회성 정책이 아닌, 도시정비 분야의 대표적인 정책으로 자리매김하고 지속적으로 발전하기를 바란다.


남진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한국도시부동산학회장

#저성장#성숙시대#변화#노후#주택#도시#인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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