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올해 90세라고 하면 지인들이 “아이고, 장수하시네” 하고 말한다. 내 생각에 그 나이는 억척같은 노력으로 얻은 것이다. 아들 셋, 딸 셋을 기른 엄마는 악착같이 운동한다. 어느 멋쟁이 할머니들처럼 체육관에 가는 것이 아니다. 근처 놀이터로, 공터로 다니며 새벽부터 몇 바퀴를 돌다 온다. 허리가 굽어 잘 걷지도 못하는 상황이라 보행기가 없으면 안 되는데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기필코 나가 하루의 운동을 마치고 돌아온다. 엄마가 필사적으로 운동을 하는 이유는 짐작하건대 자식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다. 여든이 넘고 몸 곳곳에 이상 신호가 감지될 때 엄마가 넋두리처럼 한 말이 있다. “인자 다 됐재∼. 내가 건강해야 느그가 편할텐데.” 비가 오는 날은 보행기를 집 안에 들여 놓고 거실에서 뱅뱅. 젊어 일을 하실 때도 늘 조바심으로 성격이 급했고, 어미새처럼 성실했던 분. 내가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밥벌이하는 정서적 바탕은 어릴 때부터 보아온 그분의 근면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운동을 해도 노화는 막을 수 없다. 장기가 말썽을 부리는 것도. 엄마가 다니는 병원에서 신장 기능이 많이 떨어졌으니 큰 병원에 가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급한 대로 동네에 있는 병원으로 예약을 잡아 다녀왔다. 성격이 하도 급해 빨리 가자고 닦달하는 바람에 병원에 한 시간 가까이 일찍 도착했다. 차에서 보행기를 내리고 나무 벤치에 앉아 맞은편에 있는 병원을 봤다. 3층이나 될까? 오래된 빌라처럼 위세 없이 편안하고 푸근했다. 그 옆으로는 김밥집이 있었고 둥근 도로로는 녹색 버스가 천천히 움직였다. 어느 건물인지 헤맬 필요 없이, 저 앞의 건물로 바로 들어가면 된다는 사실이 심리적 안정감을 주었다. 엄마는 별말이 없었다. 예전에는 자식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 분명 존재감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엄마는 별말이 없고 우리끼리 시끄럽다. 한 번씩 엄마의 눈을 보면 시끄러운 자식들을 보는 것 같지도 않다.
종합병원이라고는 하지만 도심의 큰 병원과 비교하면 작은 곳이라 그곳에서의 진료는 한결 수월했고 편안했다. 동선이 짧고 대기 시간이 길지 않으니 엄마도 크게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검사 결과는 좋지 않았다. “신장 기능이 18% 남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신장이 안 좋다는 이야기는 몇 년 전부터 들었지만 그리 정확하고 뾰족한 수치로 들으니 절망도 구체적이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으셨습니다, 라는 말을 들은 것 같아 돌아오는 차 안에서 계속 먹먹했다.
추가 검사를 위해 오늘도 병원을 찾았다. 피를 뽑고 방광 검사를 했다. 병원 내에서 움직여야 하는 거리도 짧고 대기 시간도 길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감사했다. 정영선 조경가의 삶과 일을 다룬 영화 ‘땅에 쓰는 시’에는 그녀가 조경한 서울의 한 유명 병원 얘기도 나온다. 그 병원의 벤치에 앉아 그녀가 말한다. “병원 앞에 키 높은 나무를 빽빽하게 심어 숲을 만들었어요. 환자랑 가족들 가슴이 무너질 때 한바탕 울고 갈 수 있는 장소도 있어야지요.” 그 사려 깊은 마음이 지금껏 깊은 여운으로 남아 있다. 노인을 위한 환경이 사각지대로 남지 않으면 좋겠다. 많은 투자와 고민이 필요하겠지만 최신식의 크고 멋진 공간 없이 그저 담담한 얼굴의 낮은 건물만으로도 환자와 보호자는 적지 않은 위로와 다독임을 받는다는 걸 모두가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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