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녀의 비애[이준식의 한시 한 수]〈272〉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7월 11일 22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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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녀들 일찍 일어나 웃으며 인사 나누는데,
계단 앞 비질하는 사내 하나가 도무지 낯설다.
사내에게 금붙이와 돈 건네며 앞다투어 묻는 말,
바깥세상도 이곳과 비슷한가요?
(宮人早起笑相呼, 不識階前掃地夫. 乞與金錢爭借問, 外頭還似此間無.)

―‘궁중의 노래(궁사·宮詞)’ 왕건(王建·약 765∼830)

구중궁궐에서 황제와 그 여인들의 시중을 들던 궁녀. 대개 열다섯 전후에 징발되어 평생을 외부와 단절된 채 살아야 했다. 그나마 100여 명에 이르는 후궁 즉 비빈(妃嬪)들은 제왕의 여자로 지정되었기에 높은 품계도 받고 보수도 많았지만 궁녀는 달랐다. 품계나 보수도 없이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면서 독신으로 지냈다. 당 태종이 궁녀 3000명을 일시에 방면해 준 사례가 역사의 미담처럼 전해질 정도.

시는 바깥세상과 오래 격절된 궁녀들의 외로움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저들의 시야에 청소하는 내시 하나가 들어오자 갓 들어온 신참이겠거니 하고 달려간 모양이다. 고작 ‘바깥세상도 이곳과 비슷한가요’라는 이 질문 하나 때문에 그랬는지 아니면 낯선 남자가 무턱대고 반가웠는지는 알 수 없다. 이게 재물까지 건넬 일인가 싶지만 그간 세상일이 오죽 궁금했으면 그랬을까 생각하면 실로 마음 아린 장면이다. 변변한 보수가 없던 저들에게 어디서 ‘금붙이와 돈’이 났을까. 경사가 있을 때나 특별한 심부름을 하면 황후나 비빈들이 상급(賞給)을 줬다는 기록은 많다. 외부 출입이 불가능하니 이런 식으로라도 재물을 쓰고 싶었는지 모른다. 이 시는 102수로 된 시인의 장편 연작시 중의 하나.

#궁녀#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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