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어제 연 3.5%인 기준금리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1월 이후 12차례 연속, 기간으로는 1년 6개월간의 역대 최장 동결이다. 물가 상승세가 둔화됐지만 가계부채와 집값, 환율 등을 고려해 통화 긴축 기조를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통화정책 방향 결정문에 ‘기준금리 인하 시기 등을 검토해 나갈 것’이라는 표현이 처음으로 등장하면서 통화정책 전환의 가능성을 열어뒀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어제 간담회에서 향후 통화정책 방향과 관련해 “차선을 바꾸고 적절한 시기에 방향 전환할 상황은 조성됐다”고 했다. 금통위원 2명은 향후 3개월 이내에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4%로, 석 달 연속 2%대를 이어가면서 물가만 놓고 보면 금리 인하를 검토할 시점이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통화정책 변경을 논하기엔 섣부른 측면이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를 내릴 가능성이 커지긴 했지만, 미국과의 금리 격차가 사상 최대인 2%포인트로 벌어진 상황에서 한국이 미국보다 먼저 내릴 이유는 없다. 원-달러 환율은 4월 1400원대까지 뛴 데 이어 최근에도 1380원대 안팎에서 움직이고 있다. 달러 초강세 상황에서 금리 인하를 서둘렀다가 원화 가치 하락으로 환율이 오르면 물가가 다시 들썩일 수 있다.
급증하는 가계빚과 심상찮은 집값 상승세도 불안 요소다. 지난달 말 기준 예금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해 말보다 20조5000억 원 불어난 1115조5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올해 상반기 가계대출 증가 폭은 지난해 상반기의 5배에 달했다. 서울 아파트값이 16주 연속 오르는 등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을 중심으로 집값도 들썩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시장에 금리 인하 신호를 잘못 준다면 가계부채 급증과 집값 상승을 부채질할 위험이 있다.
물론 기업 투자심리가 위축되고 내수 회복이 지연되는 등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부작용과 피로도는 무시할 수 없다. 이에 정부와 여당, 한국개발연구원(KDI)까지 나서 한은을 압박하며 금리 인하의 군불을 때고 있다. 하지만 섣부른 금리 인하가 가져올 후폭풍이 더 클 수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 지금은 물가와 경제 상황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일관되고 신중한 통화정책을 이어가야 할 때다. 아직은 인내심이 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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