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170원 오른 시간당 1만30원으로 결정됐다. 1988년 최저임금이 도입된 이후 37년 만에 1만 원을 넘어선 것이다. 월급으로 환산하면 209만6270원이다. 올해도 경제적 파급효과에 대한 깊은 고민 대신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사실상 정부를 대변하는 공익위원들이 노사 양측 눈치를 보며 어중간한 선에서 타협하는 일이 반복됐다.
최저임금위 위원들은 어제 새벽까지 회의를 열어 노사가 내놓은 2개 수정안을 놓고 표결해 사용자 측 안인 1.7% 인상을 결정했다. 27명의 위원 중 민노총 측 위원 4명은 표결에 불참했다. 내년 인상률은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 1.5%에 이어 역대 2번째로 낮은 상승폭이다. 물가상승률에 못 미친 인상폭에 노동계는 “실질임금 삭감”이라며 반발한다. 동결을 주장한 경영계, 자영업자들은 심리적 마지노선인 1만 원이 무너졌다며 불만스럽다는 반응이다. 앞서 식음료·숙박 등 일부 업종의 최저임금 차등화는 표결 끝에 올해도 무산됐다.
내년도 상승폭이 적긴 하지만 한국의 최저임금은 올해 이미 일본, 대만, 홍콩보다 높은 아시아 최고 수준이다. 내년 최저임금 1만30원에 주 15시간 이상 일할 경우 하루 분을 더 지급하는 주휴수당까지 고려하면 시간당 1만2036원이다. 이 때문에 종업원을 줄이고 무인계산대를 설치하는 ‘나 홀로 자영업자’와 주 15시간 미만 일하는 ‘쪼개기 알바’, 폐업하는 소상공인이 늘어날 것이란 우려가 적지 않다.
어느 쪽도 만족 못하는 결과가 나온 데에는 결정 구조의 문제가 있다. 최저임금이 올라도 일자리를 잃을 염려가 없는 대기업·공기업 정규직 중심 양대 노총이 노동계를 대표하면서 임금 인상으로 직접 타격을 받는 취약계층, 비정규직의 목소리는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 경제와 노동 현장에 대한 객관적, 종합적 판단 없이 노사가 그때그때 유리한 경제지표를 내세워 강경한 주장을 펴는 것도 문제다. 그러다 보니 올해는 업종별 차등적용 문제로 노사가 격돌해 일부 근로자위원이 의사봉을 빼앗고 투표용지를 찢는 일까지 벌어졌다.
최저임금 결정은 저소득 근로자의 삶과 중소상공인들의 경영에 직접적이고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사안이다. 이런 일을 노사가 흥정하듯 주먹구구식으로 정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주요 선진국들의 사례 등을 참조해, 과학적인 자료와 합리적인 근거를 토대로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새로운 체계를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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