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가 피격당했다. 13일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유세하던 트럼프 후보는 날아든 총탄에 오른쪽 귀 윗부분을 맞았다. 저격범은 약 150m 떨어진 건물 옥상에서 반자동소총으로 8발을 쐈고, 현장에서 사살됐다. 트럼프 주변의 지지자 1명이 빗나간 총탄에 숨졌고, 2명이 중상을 입었다. 20대 백인 남성인 저격범은 공화당원이지만 진보단체 소액 기부 기록이 나왔다고 보도됐다. 총격 배경은 수사가 진행 중이다.
암살 시도는 11월 대선에 나설 당 공식 후보로 트럼프를 추대하는 전당대회 시작을 이틀 앞두고 발생했다. 총알이 2∼3cm 더 트럼프 쪽으로 날아갔다면 사실상의 대선 후보가 암살당하는 미 역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미국 국내는 물론이고 우방국과 적대국을 가리지 않고 외교적으로도 큰 혼란이 시작될 뻔했다. 트럼프는 예정대로 전당대회에 참석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사건은 증오가 판치는 미국 정치의 속살을 그대로 노출한것이다. 젠더 이민자 소수자 정책을 놓고 반목하던 워싱턴 정치는 2016년 트럼프 등장 후로는 더 자극적인 언사가 일상이 됐다. 통합의 책무가 있는 대통령 트럼프가 비판자를 조롱하며 증오를 부추겼고, 대화와 타협이 사라지면서 민주주의는 질식해 갔다. 막말 정치의 한 축인 트럼프가 총탄을 맞았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미국 정치가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건강한 공론장은 무너지고 있다. 트럼프 후보가 4년 전 자신이 패배한 대선을 두고 “실제는 내가 이겼다”고 주장하는데 적잖은 미국인이 사실로 믿고, 일부는 폭력적인 의사당 난입까지 했다. 광적인 팬덤의 등장과 함께 폭력도 불사하겠다는 생각이 번져 갔다. 지난달 시카고대 여론조사에선 바이든 또는 트럼프가 대선 승자가 되는 걸 막기 위해서라면 위력(force)을 써도 좋다는 응답이 각각 10%, 7%가 나왔다. 암살 시도가 조사 결과가 보여준 저변의 분노와 무관할 수 없다.
미국에선 케네디 형제와 킹 목사가 암살된 혼돈의 1960년대를 거쳐 1981년 레이건 대통령 암살 시도가 있었다. 이후 40년 넘도록 자취를 감췄던 정치적 암살이 다시 시도된 것이다. 정치 양극화와 정치인 선동을 더는 용인하기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이런 미국적 현상은 보면 볼수록 우리 정치와 닮았다. 우리도 올 초 야당 대표를 겨냥한 테러가 있었다. 반면교사로 삼지 못한다면 우리도 비슷한 일이 생기지 말란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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