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손님을 맞기 위해 식당을 예약해야 할 때가 많다. 풀코스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을 예약해 달라는 분을 위해 예약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데 오히려 “아무 데나, 또는 알아서 예약해 달라”고 할 때 골치 아프다.
전 세계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을 섭렵하며 유명 셰프들의 훌륭한 음식과 좋은 와인을 누려 온 사람일수록 원하는 것이 극명하다. 그들은 유행에 앞서가는 젊은 셰프가 일하는 레스토랑보다는 꾸준히 현지인에게 인정받아 온 전통의 레스토랑을 선호한다. 넷플릭스 시리즈 ‘셰프의 테이블’에도 등장한 알랭 파사르나 ‘셰프계의 피카소’ 피에르 가녜르, ‘미식계의 황태자’ 베르나르 파코가 이끄는 랑브루아지와 같은 레스토랑을 예약하면 틀림없다. 이 셰프들은 전 세계를 다니며 귀신처럼 좋은 식재료를 발굴할 뿐 아니라 오랜 숙련으로 익혀온 제대로 된 조리 기술에 천재성을 덧입히고, 일심동체로 움직이는 체계적인 주방 스태프들의 도움까지 받아 우리가 루브르 미술관에서 만나는 ‘모나리자’ 이상의 감동을 선사한다. 큰돈 들지언정 이런 셰프들의 음식은 죽기 전 한 번은 즐겨볼 만하다.
문제는 가성비 운운하며 보통의 식당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예약할 때다. 내게는 호환 마마보다 무서운 말이 “파리에 가서 달팽이, 양파 수프, 푸아 그라는 꼭 먹어야 한다”는 말인데,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이 “불닭볶음면과 달고나를 먹어야 한다”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프랑스인들은 가끔 먹는 별식인데 관광객들이 많이 찾기 때문에 관광지 주변 식당들에선 이런 메뉴를 자주 볼 수 있다. 그런데 냉동 달팽이나 푸아 그라, 성의 없이 만든 양파 수프를 내놓는 일이 허다하다.
내가 자주 가는 가성비 좋은 맛집이 몇 있다. 가정식이라 불리는 비스트로 내지는 네오 비스트로인데 대부분 노포이고 현지인들이 주로 찾는다. 1908년에 문을 연 퐁텐 드 마르스는 프랑스 남서부 가정식에 집중하는데 간이나 고기를 찰흙처럼 네모난 형태로 내놓는 파테, 마요네즈를 얹은 계란, 강낭콩과 소시지 그리고 오리고기 등을 넣어 만든 음식이 시그니처다. 파리를 처음 방문했을 때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친구들과 이 식당을 빌려 식사하고 더치페이로 계산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6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오페라 가르니에와 몽마르트르 사이에 위치한 셰 조르주 또한 잘 정돈된 노포 중 하나로 여기 스테이크와 감자튀김 그리고 훌륭한 와인 리스트는 언제나 함께 방문한 이들의 찬사를 이끌어낸다. 1864년에 처음 문을 연 바스티유 광장 주변의 보팡제르는 독일과 접경한 알자스 음식을 전문으로 한다. 아르누보 양식의 실내도 볼만하고, 리슬링 와인과 함께 차갑게 서비스되는 모둠 해산물 요리가 풍성하다. 수플레나 설탕을 넣지 않은 슈 페이스트리 초콜릿 프로피트롤도 추천한다.
이들 노포가 한결같은 사랑을 받는 까닭은 유행을 따르지 않고 전통 조리법을 고수하되 현지인은 물론이고 여행자들도 즐길 수 있는 적정한 가격의 음식과 훌륭한 서비스를 제공해서다. 본식이 나올 때 함께 나오는 빵은 음식의 소스를 찍어 먹어서 간을 맞추는 역할을 하고, 음식에 맞는 와인을 함께 마시면 맛이 배가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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