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했던 죽미령 전투의 교훈[임용한의 전쟁사]〈324〉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7월 15일 23시 00분



올해는 장마가 유달리 일찍 시작되었다. 7월 초순부터 내내 비 소식이다. 1950년 7월도 그랬던 것 같다. 7월 4일경, 경기 오산 죽미령 일대는 비가 내렸다. 죽미령 도로에 차단선을 치고 북한군을 기다리던 미 24사단 스미스 특수임무부대원들은 온몸과 마음이 비에 홀딱 젖었다.

다음 날 미군과 북한군 사이에 벌어진 최초의 전투는 미국의 전사에서 언급하기 싫을 정도로 끔찍한 것이었다. 전차에 돌파당하고, 공포에 무너진 건 오히려 이해할 만했다. 병사들은 총기 손질을 할 줄 몰라 전날 내린 비와 진흙으로 소총의 절반 이상이 발사되지 않았다.

장교들 3분의 2가 전투 경험도, 제대로 된 지휘 경험도 없어서 공황에 빠진 병사들을 효과적으로 통솔하지 못했다. 한 소대장은 죽미령 전투에서 패하고 후퇴하는 중에 물이나 음식을 찾아보겠다고 자원한 병사들을 떠나보낸 걸 후회했다. 그들 절반은 탈주병이었고, 절반은 지리도 모르는 곳을 헤매다가 죽거나 포로가 되었다. 그 장교는 전장에 있는 부대는 어떤 경우도 개별 행동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그렇게 배웠다.

몇 년 전 그 죽미령을 방문한 적이 있다. 기념비와 전차, 전투기가 전시되어서 이곳이 과거의 전적지임을 말해 주고 있다. 여기뿐 아니라 6·25전쟁의 전적지 곳곳에 이제는 거의 빠짐없이 기념시설이나 비가 들어서 있다.

하지만 이 기념시설들이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을까? 말 그대로 기념뿐이거나 감상적, 이념적 교훈뿐이라면 여기에 전시된, 이제는 실전에 사용할 수 없게 된 낡은 무기와 다를 바가 없다.

도로는 넓어지고 숲은 울창해져서 과거 전투의 현장을 상상하기도 어렵다. 이젠 디지털 기술도 선진국인데, 전투를 느끼고 교훈을 찾고, 승리했든 패배했든 이곳에서 생명을 걸었거나 잃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달해 주는 곳이 될 수는 없을까?

#죽미령#죽미령 전투#전쟁사#전투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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