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한국은행에 기준금리를 내리라는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국민의힘 민생경제안정특별위원회 위원들은 그제 한은 관계자를 참석시킨 회의에서 금리 인하를 주문했다. 앞서 대통령정책실장, 경제부총리가 기준금리 인하 필요성을 강조하는 발언을 한 데 이어 여당까지 한은에 대한 공세에 가세한 것이다.
민생특위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최근 ‘장기적 내수 부진의 주원인은 고금리 장기화’라고 지적한 점, 최상목 부총리가 소상공인의 내수 부진 원인을 고금리로 꼽은 점을 들어 한은에 기준금리 인하를 주문했다. 지난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출석한 이창용 한은 총재가 금리 인하 문제에 대해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독립적으로 결정하겠다”고 선을 그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인하를 요구하는 모양새다.
현재 한국의 기준금리는 3.5%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기준금리가 한국보다 2%포인트 높은 상황에서 한국이 먼저 금리를 내릴 경우 부작용이 우려된다. 금리 차이가 확대되면 원화의 상대 가치가 더 떨어져 원-달러 환율이 오르고, 달러로 해외에서 사오는 수입물가도 높아질 수 있어서다. 실제로 지난달 수입물가는 국제유가가 하락했는데도 환율이 오른 영향으로 한 달 만에 상승세로 돌아섰다.
기준금리 인하는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끌어내려 ‘빚투’를 자극하고 수도권 아파트값의 상승 속도를 더 높일 것이다. 지난달 소비자물가가 전년 동월 대비 2.4% 상승에 그쳤지만, 한국 물가지수에는 자기 집에 사는 비용인 ‘자가 주거비’가 빠져 있다. 만약 자가 주거비까지 포함하는 선진국 방식으로 계산한다면 물가상승률은 더 높게 잡힐 것이다. 한국전력 등의 천문학적 적자 때문에 억지로 눌러놓은 전기·가스요금도 하반기 추가 인상이 불가피해 물가 상승 압력은 높아질 전망이다.
대내외 경제 환경에 대한 고려 없이 내수 경기를 살리겠다고 한은의 통화 정책 기조를 흔드는 건 위험한 일이다. ‘인플레이션 파이터’로 유명한 폴 볼커 전 연준 의장도 대선을 앞둔 카터 정부의 압박을 받고 1980년 금리를 낮췄다가 물가에 다시 불이 붙어 더 큰 폭으로 금리를 올리는 실수를 한 적이 있다. 인플레 재발을 감당할 수도 없으면서 눈앞의 경제 성과에 급급해 한은에 ‘볼커의 실수’를 강요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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