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는 전기차(EV) 시장 태동기였다. 2010년 나온 세계 첫 양산형 전기차 닛산 ‘리프’는 2014년 국내에도 출시됐는데, 1회 충전 후 주행 가능 거리는 132km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전기차에 대해 기대와 의구심을 동시에 갖고 있었다. 그래서 일본 도요타는 하이브리드차(HEV)에, 독일 메르세데스벤츠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PHEV)에 집중했다.
하지만 전기차의 확산 속도는 생각보다 빨랐다. 테슬라 ‘모델S’는 ‘전기차=소형차’라는 인식을 깨고 고급 전기차 시장의 포문을 열었다. 각국 정부는 환경을 지킨다는 명목하에 앞다퉈 보조금을 지급했고 충전 인프라도 확산됐다. 최근 기아가 선보인 ‘EV3’는 1회 충전 후 최대 주행 거리가 501km까지 늘어났을 정도로 기술도 발전했다.
그랬던 전기차 시장이 올해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에 직면했다. 전기차는 보조금을 받아도 동급 내연기관차보다 여전히 비싸다. 살 사람(얼리어답터)들은 이미 샀고 내연기관차 대비 효용성을 따지는 사람들은 머뭇거리고 있다. 지난 겨울 미국에서 한파로 배터리가 방전돼 길가에 멈춰 서버린 전기차들의 모습도 영향을 미쳤다. 시장이 주춤하면서 국내 배터리 업계는 올해 처음으로 매출이 전년 대비 뒷걸음질 칠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전기차가 ‘예정된 미래’라고 보는 전문가가 많다. 유럽연합(EU)과 영국, 캐나다는 탄소 감축을 위해 2035년부터 내연기관차 신차 판매를 금지한다. 자율주행차 시대가 오면 수천 개의 반도체가 데이터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전력을 소모하게 되는 만큼 대형 배터리가 필수적이라는 점도 전기차 전환을 가속화할 것이다. 기술 발전으로 배터리의 성능도 향상될 것이다.
완성차 업계에선 캐즘이 2026년까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국내 배터리 업체들로선 미래에 봄날을 맞이할 때까지 일단 이 보릿고개를 넘기는 게 급선무다. 경쟁국의 추격도 거세다.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시장에서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K배터리 3사의 점유율은 지난해 50% 선이 붕괴됐다. 올해 1∼5월 기준으로는 46.8%(SNE리서치)까지 내려왔다. 강력한 내수시장과 값싼 원재료 등에 힘입은 중국 업체들의 점유율은 빠른 속도로 올라 30%를 넘었다.
수십 년 호황과 불황의 사이클을 겪어온 반도체와 달리 역사가 짧은 배터리 산업은 처음 겪는 위기에 고군분투하는 중이다. 배터리 3사는 중국 업체들의 텃밭인 저가형 리튬인산철(LFP) 시장에 도전하고 있고, 동시에 기술 격차를 벌리기 위해 전고체·반고체 배터리를 개발하고 있다.
10∼12일 동아일보는 ‘도전받는 K배터리’ 시리즈를 통해 한국과 미국, EU의 배터리 지원책을 점검했다. 1조 원씩 투자해 배터리 공장을 지을 때 기업이 받을 수 있는 자금 지원 규모를 비교했더니, 미국에선 5년간 3조 원이 넘는 반면 EU는 4000억 원, 한국은 1200억 원에 그쳤다. 고급 인재에 대한 지원책은 중국에 밀렸다. 가격, 기술, 인재 경쟁력을 빠르게 키워나가는 경쟁국에 예정된 미래의 주도권을 내줄 판이다. 정부의 합리적인 지원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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