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창덕]두 번이나 실패한 사전청약 제도의 교훈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7월 17일 23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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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덕 산업2부장
김창덕 산업2부장

경기 파주·운정 주상복합 3블록은 2022년 6월 사전청약 당시 45 대 1이라는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2021년 말까지 지속된 집값 폭등세가 다소 진정되던 시기였지만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A노선 운정역에 인접한 단지라는 이름값을 한 것. 2년이 흐른 지난달 28일 시행사인 DS네트웍스는 사전청약 당첨자에게 “불가피한 사유로 사업 취소를 안내드린다”고 통보했다.

불확실성에 불확실성을 더한 사전청약

사전청약 당첨자들은 날벼락을 맞았다. 결혼 6년 차였던 한 사전청약 당첨자는 신혼부부 특별공급에 지원해 내 집 마련에 성공한 듯했지만 물거품이 됐다. 게다가 2년 허송세월을 하고 나니 결혼 8년 차가 됐다. ‘7년 이하’ 기준을 넘겨 더 이상 특공 혜택을 받기 어려워졌다. 당첨자들 중에는 본청약을 위해 치밀한 자금계획을 세웠다 모든 게 꼬여버린 이들도 있다. 사전청약 당시 예고된 입주 시기에 맞추느라 웃돈을 줘가며 전세계약 기간을 조정했던 이들도 난감한 상황에 놓였다고 한다.

한국 아파트 분양시장에는 기본적으로 ‘불확실성’이 깔려 있다. 만들어진 물건을 확인하고 구매하는 게 아니라 물건을 만들겠다는 계획만 보고 계약을 맺기 때문이다. 아파트를 짓는 2년여 동안 시공사나 시행사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도 말이다.

사전청약은 이 불확실성이 한층 더 큰 제도다. 물건을 만들겠다는 계약인 본청약조차 확정되기 전 구매자부터 모집한다. 물론 부동산 시장이 기대대로 흘러갈 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금리가 오르고 공사비가 치솟는 등의 악재가 겹치면 본청약은 뒤로 밀리기 마련이고 급기야 사업이 취소되기도 한다.

정부는 이런 리스크를 충분히 알고 있었다. 이미 10여 년 전 똑같은 부작용을 겪었으니까. 사전청약이 처음 도입된 건 2009년인데 몇 년 지나지 않아 운영이 중단됐다. 이유는 지금과 똑같은 본청약 지연에 따른 부작용 때문이었다. 이미 ‘실패 낙인’이 찍힌 제도가 다시 부활한 건 2021년이었다. 집값이 가파르게 오르고 분양 시장이 끓어오르자 추후 분양할 단지들을 미리 당겨 수요를 분산시킨 것이다. 그 결과는 또다시 실패.

기업들은 새로운 전략을 짜거나 상품을 내놓을 때 ‘A/B 테스트’라는 걸 한다. 가설이 아무리 훌륭해도 시장이 A에 반응할지, B에 반응할지는 시장만 알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정부가 매번 새로운 정책을 펼 때마다 A/B 테스트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한 번 실패했던 정책을 급한 마음에 다시 꺼내 쓴다는 건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정부는 5월 사전청약 제도를 사실상 폐지했다. 또 시행규칙을 고쳐 9월부터는 민간 건설사가 진행한 사전청약 당첨자들도 다른 아파트 분양에 참여할 수 있도록 풀어주겠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3년 만에 다시 폐지될 정책을 괜히 끄집어내 애꿎은 잠재적 피해자들만 양산한 꼴이 됐다.

부동산 정책은 땜질식 처방이어선 안 된다

“강남 집값을 잡겠다”와 같은 정치적 슬로건이 부동산 시장을 어떻게 교란시켰는지 우리는 지난 정부에서 충분히 목격했다. 강남 집값이 잡히기는커녕 다른 지역에까지 거품이 잔뜩 끼었고, 금리 인상으로 집값이 추락하기 시작하자 수많은 ‘역전세’ 피해자가 나타났다. 시장의 기본인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사라진 결과였다.

두 번이나 실패한 사전청약 제도는 단기 효과를 목적으로 한 땜질식 처방이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시장의 불확실성을 하나라도 더 제거하는 것이지, 더하는 게 아니다.

#사전청약#부동산 정책#시장의 불확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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