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약수역 7번 출구에서 나와 약수시장으로 통하는 골목 안쪽에 ‘바다와 육지’라는, 자못 장엄한 이름을 단 횟집이 있다. 4년 전 강남에서 이 동네로 이사 온 소설가 고종석 선생의 단골집이다. 오랜 일터였던 신문사에서 은퇴한 후 SNS 커뮤니티에 논쟁적인 글을 쓰며 정치 권력 및 그들의 팬덤 세력과 격렬하게 불화한 선생이 허허로움을 달래고 싶을 때마다 나와 앉아 ‘혼술’을 시작하는 곳이다. 늘 혼자 마시는 건 아니고 가끔 보고 싶은 지인들을 부른다. 선생에겐 일종의 진지(fort)인 셈. 나도 선생의 호출을 받고 십수 차례 이곳을 찾은 바 있다.
이날 선생은 20대에 선생의 애독자였다가 변호사와 작가로 잘 성장한 이들을 불렀고 나도 말석에 끼어 앉았다. 이 집이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한 것은 2010년으로 금실이 좋아 보이는 초로의 부부가 운영하고 있다. 이 집 이름이 ‘바다와 육지’인 이유는 차림표를 보면 금세 짐작할 수 있다. 명색이 횟집이어서 각종 활어회와 초밥이 메뉴의 주를 이루지만, 일반 주점에서나 하는 육지에서 나는 식재료로 만든 안줏거리를 함께 손님상에 내놓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두부김치나 ‘돈가스’가 그런 것이다. 나름 실용적인 영업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활어회를 즐기는 사람들은 활어회를 잘 못 먹는 사람을 ‘죽어도’ 이해할 수 없다. 제각각인 비위 때문에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그런 식재료들이 몇 개 있다. 홍어도 그렇고 고수나 오이도 그렇다. 지금은 안 그렇지만 내륙 출신인 나도 처음엔 활어회를 못 먹어서 횟집에서 모임이라도 있으면 함께 딸려 나온 메추리알 같은 것에만 손이 갔다.
횟집에서 두부김치가 먹고 싶고 돈가스가 먹고 싶은 이들은 관념이 아닌 실재다. 그들을 편의상 비주류 소수파라고 규정하자. ‘바다와 육지’는 바로 이런 마이너리티를 배려하는 집인 셈이다. 그것은 고종석 선생이 평생 소설과 칼럼을 통해 일관되게 근음으로 삼고 있는 가치이기도 하다. 이날도 일행은 활어회와 두부김치와 돈가스 등을 골고루 시켜 술을 마셨다. 횟집 주방에서 내는 ‘육지 음식’의 맛 또한 기대 이상이다. 주인 내외는 요란하지도 않고 과묵하지도 않게 손님의 입맛과 취향을 배려한다.
아무튼 ‘바다와 육지’라는 매우 실존적인 이름을 가진 횟집은 지식인으로 그리고 문학가로 치열하게 글을 써온 한 선생의 노후의 배경이 되기에 상당히 적절해 보이는 곳이다. 그곳에 앉아 있는 고 선생의 실루엣은 이미 정물처럼 보인다. ‘바다와 육지’는 그러니까 고 선생에겐 생텍쥐페리에게 ‘레 되마고’와 같은 곳이고, 문학평론가 김현에게 반포치킨 같은 곳이다.
가스통 바슐라르가 특별한 장소성을 설명하면서 표현한 “물질적 모성의 공간”이라는 개념은 개인에게 원형적인 세계로 회귀할 모티프를 부여하는 곳이다. 우리는 누구나 바다와 육지로 이루어진 자연계로부터 와서 다시 그곳으로 차례차례 돌아간다. 지인들과의 몇 잔의 술이 그 여정에 더해지고. 노포는 그렇게 자연의 질서와 운명의 소여에 동참하기도 하는 것이다. 약수역 7번 출구 앞 ‘바다와 육지’에 가면 누구보다도 명민하게 깨어 있어서 일찍이 쓸쓸해진, 시대와 불화하는 한 지식인과 조우할 수도 있다는 걸 잊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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