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이탈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평소 인력난이 심했던 응급실 진료가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의대 증원에 반발해 전공의들이 빠져나간 후 그 빈자리를 메우며 버텨온 전문의들마저 탈진으로 응급실을 떠나고 있다. 순천향대 천안병원이 축소 운영 중이고, 서울 한양대병원은 중증 외상 환자를 받지 않는다. 응급의료를 총괄하는 국립중앙의료원도 다음 달부터는 응급전문의 1명으로 버텨야 한다. 응급실 뺑뺑이를 없애겠다며 의대 증원을 발표한 후 24시간 돌아가야 할 응급실 불이 꺼지고 있다.
특히 응급 환자들에게 최후의 보루인 전국 권역응급의료센터들마저 진료 차질을 빚고 있어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특정 지역에 대형 사고나 재해로 환자가 발생하면 다른 병원 응급실에선 안 받아줘도 권역센터는 받아줘야 한다. 그런데 전국 44개 권역센터 중 응급 진료를 축소한 곳이 서울 한양대병원, 경기 아주대병원, 충남 단국대병원을 포함해 최소 5곳이다. 다른 진료과목 전문의들과 병원장들까지 당직을 서며 버티고 있지만 다음 달까지 10곳이 문을 닫을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나온다.
응급실 폐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의사다. 어느 나라든 의사들이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하며 단체행동을 할 때도 중증 응급 환자 진료엔 차질이 없도록 하는 것이 제1 수칙이다. 그런데 의대 증원 전면 철회를 요구하며 전공의들이 응급실을 비웠다. 뇌출혈이나 교통사고로 죽을 고비의 사람들을 살려내는 보람으로 살던 이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어떠한 위기 상황에도 응급 중증 환자 진료실은 돌아가게 하는 것이 정부의 책임이다. 응급 의료진의 열악한 처우와 의료 사고 위험은 외면하던 정부가 일방적 의대 증원 발표로 전공의들 이탈 구실을 주더니 5개월째 복귀를 설득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최근에는 전공의가 없어도 병원이 정상 운영되도록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 혁신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역대 정부가 하고 싶었으나 막대한 재정이 엄두가 나지 않아 미뤄왔던 과제다. 당장 생사를 오가는 응급 환자가 치료받을 곳이 사라지는 판에 응급 대책 빠진 장기 계획이 무슨 소용인가. 그저 응급실 갈 일 없도록 각자 열심히 기도하는 것 외엔 대책이 없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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