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는데, 여름 감기로 한동안 고생했다. 어쩔 수 없었다. 에어컨 바람이 싫어 선풍기를 틀고 지내는 연구실과 에어컨이 빵빵 돌아가는 실험실을 오고 간 탓이다. 실험실은 실험 장치 때문에 에어컨은 꼭 틀어야 한다. 하루 종일 온탕과 냉탕을 옮겨 다니다가 감기에 걸린 것이다.
낮엔 지낼 만하다가, 밤만 되면 기침을 하고 열에 식은땀까지 나 고생했다. 해열제를 먹고 잠을 청했지만 고생스러웠다. 보통 사람의 정상 체온은 36.5∼37.2도다. 37.8도를 넘어 39도 이상이 되면 저혈압에 의한 뇌 기능 저하로 의식을 잃을 수 있다. 반면 36도보다 낮아져 체온이 28도까지 떨어지면 신체의 기능 저하로 죽음에 이를 수 있다. 이렇듯 정상 온도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신체는 오작동을 일으킨다. 그러나 환경이 다른 우주와 비교해 보면 지구에서 인간이 정상 체온을 유지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지구 밖 광활한 우주로 생각을 뻗어 나가본다. 우주에서는 어떨까? 우주의 온도는 영하 270도다. 사계절도 없는 극저온의 세계. 우주의 온도는 1965년 천체물리학자인 아노 펜지어스와 로버트 윌슨이 우주에 가득 차 있는 절대온도 2.725K의 우주배경복사를 측정함으로써 알아냈다. 이 공로로 그들은 1978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우리는 섭씨온도(℃)를 사용한다. 물의 어는점과 끓는점 사이를 100등분으로 나누는 온도 체계다. 지구 표면의 75% 정도를 차지하는 물을 기준으로 한 온도다. 하지만 자연현상을 연구하는 물리학에서는 절대온도를 쓴다. 절대온도는 어느 특정한 물질의 온도 특성에 의존하지 않고, 물질이 가진 에너지값을 가지고 정의하며, 단위로 켈빈(K)을 쓴다.
양자역학적으로 물질의 온도가 점차 내려가면 절대 낮아질 수 없는 에너지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이 상태의 에너지를 바닥 상태라 한다. 그리고 이런 에너지를 영점 에너지라고 정의한다. 이 온도가 바로 절대영도다. 섭씨온도로 하면 영하 273도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는 인류를 화성으로 보낼 계획이다. 과연 화성의 온도는 어떨까? 화성의 여름 온도는 20도, 겨울은 영하 140도, 평균온도는 약 영하 80도다. 해가 비치지 않는 화성의 겨울엔 대기 전체의 약 25%가 얼어버린다. 해가 비치면 얼었던 대기의 95%인 이산화탄소가 기체로 변해 건조한 먼지 폭풍을 일으킨다. 참고로 이산화탄소는 영하 78도에서 얼음과 같은 드라이아이스가 된다. 외부 온도 변화만 생각해도, 인간이 온도 차 180도를 견디기는 쉽지 않을 듯싶다.
달의 온도 역시 매우 극단적이다. 낮 온도는 태양 빛에 의해 127도까지 상승한다. 이 온도는 물이 끓는 온도를 훨씬 웃돈다. 반면 밤이 되면 영하 173도까지 떨어진다. 이런 온도 차는 지구상에서는 경험할 수 없다.
습하고 무덥다고 하지만 해가 떨어지면 그래도 어디선가 바람이 분다. 헐렁한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서 동네를 어슬렁거려 본다. 고독하고 광활한 우주에서 이렇게 샌들을 신고 여름밤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또 있을까. 곧 뽀송뽀송한 이불을 덮고 잠을 잘 수 있는 가을밤이 올 것이다. 그땐 지나간 올여름의 추억을 그리워할지도 모르겠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