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마련의 꿈[이준식의 한시 한 수]〈273〉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7월 18일 22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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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장안에서 벼슬한 지 20년, 가난한 삶이나마 즐길 만한 거처가 없네.
집 가진 달팽이가 외려 늘 부러웠고, 제 몸 건사할 줄 아는 쥐가 차라리 더 나을 판.
오직 바라는 건 송곳 꽂을 만큼의 작은 땅, 목각 인형처럼 떠도는 신세만 면했으면.
내 집이라 할 수만 있다면 대만족, 습하고 좁든 시끄럽고 먼지 나든 가리지 않으리니.
(遊宦京都二十春, 貧中無處可安貧. 長羨蝸牛猶有舍, 不如碩鼠解藏身.
且求容立錐頭地, 免似漂流木偶人. 但道吾廬心便足. 敢辭湫隘與囂塵.)

―‘집 장만(복거·卜居)’ 백거이(白居易·772∼846)

안빈낙도(安貧樂道)를 꿈꾸려 해도 달팽이 집이나 쥐구멍 같을지언정 자기 거처가 있을 때나 가능한 노릇이다. 20년 벼슬살이에도 집을 갖지 못한 시인의 설움은 이래서 더 애틋하다. ‘송곳 꽂을 만큼의 작은 땅’이 있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은 급기야 물결에 이리저리 휩쓸리는 ‘목각 인형’이 되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감으로 비화한다. 목각 인형은 정처 없이 표류하는 존재를 비유한 말. 시인은 유향(劉向)의 ‘설원(說苑)’에 등장하는 이야기를 원용했다. 목각 인형이 진흙 인형을 보고 말했다. 넌 비를 맞으면 진흙으로 변해 형체도 없어지지. 난 비를 맞아도 끄떡없단다. 진흙 인형이 반박한다. 난 비를 맞으면 원래의 나로 되돌아가지만 넌 물에 휩쓸려 온 천지를 비참하게 표류하잖아.

온 가족이 알콩달콩 서로 어깨를 기대는 아늑한 보금자리, 떠나면 그립고 없으면 서러운 이 삶의 터전, 시인은 쉰 살이 되어서야 겨우 장안에 집 하나를 마련했다.

#내 집#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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