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정부는 미복귀 전공의(인턴, 레지던트)에 대해 면허정지 처분을 중단하고, 수업을 거부 중인 의대생은 F학점을 받아도 유급 대신 ‘강제 진급’시키겠다고 발표했다. 그럼에도 정부가 복귀시한으로 정한 15일까지 복귀한 전공의는 10% 미만이고 과반이 사직 처리됐다. 의대생 역시 대부분 수업 거부를 이어가고 있다.
이쯤 되면 정부도 인정할 때가 됐다. 전공의와 의대생은 내년도 의대 증원 백지화 외에 어떤 조치를 내놓아도 당분간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말이다. 내년도 증원이 정부 말대로 ‘상수’가 됐다면 이제 연내 전공의·의대생 미복귀 역시 ‘상수’로 받아들이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다.
연내 미복귀 전제로 대책 만들어야
전공의와 의대생의 진심을 의심하진 않는다. 특히 필수과 전공의들은 사명감을 갖고 힘든 길을 택한 이들이다. 갈수록 악화되는 의료 현장, 정부의 미흡한 대책, 의사를 늘리면 해결될 것이란 단순한 해법, 비상식적 증원 규모 등에 실망해 병원을 떠난 걸 ‘밥그릇 챙기기’라고만 매도할 수도 없다. 정원이 최대 4배로 늘면 학습 여건이 열악해질 것이란 의대생들의 우려도 일정 부분 타당하다.
하지만 내년도 증원은 5월 말 확정됐고 이제 전공의·의대생도 복귀해 함께 해법을 논의할 시점이 됐다. 의사인 지인은 필자에게 “전공의들은 불합리하게 결정된 정책을 마음으로 못 받아들이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2000년 미국 대선에서 더 많은 표를 얻은 앨 고어 후보가 분열을 막기 위해 패배를 인정한 것처럼, 때론 비합리적 결정이라도 승복하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2000명이란 규모를 제외하면 의대 증원은 국민 다수가 광범위하게 동의하는 사안이다.
다만 최근 정부가 잇따라 내놓은 정책이 전공의·의대생이 돌아오지 않게 하는 쪽에 가까웠다는 점은 지적하고 싶다. 당초 ‘법과 원칙에 따른 엄정 대응’을 강조했던 정부는 지난달 전공의에게 내린 각종 명령을 철회한 데 이어 면허정지 처분도 철회했다. 교육부도 의대생이 수업을 거부하자 “성적 평가를 학년 말에 하고 수업에 안 나와도 진급시켜 주겠다”며 학생들이 수업에 참여할 유인을 스스로 없앴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자명한 일이다. 누워서 버틸수록 정부가 양보안을 내놓는데 전공의와 의대생이 왜 돌아오겠다고 나설까.
의대생은 휴학이나 유급 불가피
전공의와 의대생은 올 2월 병원과 학교를 떠날 때부터 “최소 1년은 쉴 수 있다”, “유급은 각오했다”는 입장이었다. 그렇다면 정부가 해야 할 건 ‘할 수 있는 조치는 다했다’는 점을 명확히 하면서 전공의·의대생 미복귀를 전제로 대책을 만드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상급종합병원이 중증·응급 환자를 계속 볼 수 있도록 비상진료 체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다행히 교수들이 환자 곁을 지키는 만큼 중증·응급 환자 수가 인상, 진료지원(PA) 간호사 확대, 경증 환자 회송 활성화 등을 통해 연말까지 버틸 수 있도록 시스템을 보강해야 한다. 교육부는 더 이상 꼼수를 쓰는 대신 휴학 또는 유급을 허용하고 내년도 예과 1학년 7500명 수업을 전제로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수업을 제대로 안 들은 의대생을 진급시키는 건 교육 원칙에도 어긋날뿐더러 국민 건강과 생명에도 도움이 안 된다.
정부와 사회가 이제부터 해야 할 건 원칙을 지키며 전공의와 의대생을 기다리는 것이다. 또 복귀할 경우 관용을 베풀고 원하는 의사가 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마지막까지 임기응변성 대책으로 일관할 경우 이번 사태는 전공의·의대생은 물론 정부와 사회에도 유용한 교훈을 남기지 못한 또 하나의 반면교사 사례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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