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무 평정 없이 검찰 인사를 한 적은 지금까지 없었다. 정말 심각한 건데, 아무도 문제 삼고 있지 않아서 오히려 의아스럽다.” 올 5월 13일 서울중앙지검의 대통령부인 김건희 여사 수사 지휘 라인이 모두 교체됐는데, 그 직후 한 검찰 관계자가 ‘검사 인사 규정’ 위반이라고 비판한 적이 있다. 실제로 인사 규정을 찾아보니 검찰 인사의 예측 가능성과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평정을 먼저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인사를 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그런데 법무부는 검찰 인사가 다 끝난 8월 초 상반기 평정을 진행하겠다고 최근 공지했다. 예년보다 2개월 뒤로 밀린 것이다. 누가 봐도 선후가 뒤바뀐 것으로 규정 위반이다.
5월 교체 중앙지검 지휘부의 수사 독주
사실 ‘5·13 검찰 고위 간부 인사’는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인사 충돌로 더 주목받았다. 당시 박성재 장관이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인사 카드를 밀어붙이려고 하자, 이원석 총장은 “수사의 공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며 반대했다고 한다. 직전 서울중앙지검 지휘부가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과 디올백 수수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김 여사의 검찰청사 내 대면 조사를 강행하려고 하자 지휘부를 교체해 이를 막으려고 했다는 것이 이 총장 등의 시각이었다. 이미 알려진 얘기지만 총선 전에도 같은 내용의 인사가 단행될 뻔했지만 이 총장이 사표까지 제출하겠다고 버텨 무산된 적도 있다.
이 때문에 이 총장은 5·13 인사 직전 이 지검장 인사를 포함한 장관의 검찰 고위 간부 인사안을 끝까지 보지 않겠다고 고집했다고 한다. 법무부가 인사안을 대검찰청으로 가져온다면 동의하지 않는 이유를 자세하게 적어 기록에 남기겠다고 하면서 서명까지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청법엔 ‘장관은 검사의 보직과 관련해 총장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총장이 검찰 인사에 부동의한다는 것도 의견으로 친다면 법률 위반이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입법 취지와는 너무나 다른 ‘꼼수’ 인사로 볼 수밖에 없다.
그로부터 두 달 뒤 서울중앙지검 새 지휘부는 김 여사를 검찰 밖 대통령경호처 건물인 ‘제3의 장소’에서 조사하고도 조사 장소와 조사 시점, 조사 방식 등을 이 총장에게 사전에 보고하지 않았다. 검찰총장은 검찰 수사를 총괄하고, 모든 검찰 공무원에 대한 지휘 감독권이 있다. 상명하복의 조직 문화가 아직 남아 있는 검찰에선 전례를 찾기 어려운 초유의 항명 사태다.
더 큰 문제는 서울중앙지검장 혼자가 아니라 서울중앙지검의 차장과 부장, 주임 검사가 일사불란하게 총장은 물론 총장 참모진에게도 수사 내용을 보고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총장의 반대에도 2개월 전 인사가 누군가에게 왜 필요했는지를 이것보다 더 잘 보여주는 장면은 없다.
檢총장 사과로 공정성 흔들, 특검 자초
안 그래도 김 여사 사건은 거대 야당이 특검을 추진하고 있다. 이미 한 차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기 때문에 검찰 수사에 조금이라도 흠결이 발생하면 특검을 다시 추진할 명분이 더 커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총장이 서울중앙지검의 김 여사 검찰 수사에 대해 “법 앞에 예외도, 특혜도, 성역도 없다는 수사 원칙이 지켜지지 않아 죄송하다”며 대국민 사과까지 했다.
“외부와 싸워야 하는 시점에 야당에 먹잇감을 던지는 검찰 내 자중지란”이라는 한 법조인의 관전평이 하나도 틀린 게 없다. 마치 특검을 자초하는 것과 같은 서울중앙지검의 수사 과정을 보면 결국 검찰 개혁의 제1과제는 검찰 인사라는 말이 더 무겁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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