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입찰에 부친 대형 공공공사의 절반이 유찰되고 있다고 한다. 급등한 자재비, 인건비 때문에 발주된 가격으로는 이익을 남기기 어렵게 되자 건설업체들이 사업 참여를 꺼리기 때문이다. 자연재해 예방 등을 위해 시급한 주요 사회간접자본(SOC) 건설 계획까지 몇 년씩 늦춰지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올해 상반기 정부와 지자체를 대신해 조달청이 입찰을 추진한 300억 원 이상 대형 공공공사 가운데 51.7%가 유찰됐다. 2020년 상반기 18.2%였던 유찰률이 4년 만에 거의 3배로 높아졌다. 원래 정부나 지자체가 발주하는 대형 관급공사는 민간 사업과 달리 공사비를 떼일 염려가 없고, 일정한 수익이 보장되기 때문에 건설업체들이 선호하는 사업이다. 하지만 몇 년 새 철근, 시멘트, 레미콘 등 각종 자재비와 인건비가 크게 올랐는데, 정부와 지자체가 제시한 공사비는 이를 벌충할 만큼 상승하지 않아 사업에 뛰어드는 기업이 줄었다. 게다가 공공공사는 계약부터 착공까지 시차가 크다. 그사이 물가가 더 올라 대규모 적자를 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건설업체들은 섣불리 참여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집중호우 피해에 대비하기 위해 서울시가 추진 중인 강남·광화문·도림천의 ‘대심도 빗물터널’ 공사는 올해 초 두 차례 유찰된 끝에 5월 3차 입찰에서 간신히 사업자를 선정했다. 1조2000억 원으로 잡혔던 총사업비가 1조3700억 원으로 증액된 뒤에야 사업을 맡을 건설사가 나타난 것이다. 입찰 지연으로 빗물터널 완공 시점은 원래 계획보다 1년 뒤인 2028년 말로 늦어지게 됐다. 충북 제천시 생활폐기물 소각장의 경우 작년 말 내구연한이 종료될 예정이어서 한참 전에 공사가 시작됐어야 했다. 하지만 작년에만 3차례 입찰이 무산되는 바람에 결국 수의계약 형태로 바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실생활에 밀접한 SOC 투자 지연의 피해는 결국 국민이 보게 된다. 대심도 빗물터널 완공이 지연될 경우 집중호우로 서울 도심이 물에 잠길 확률은 높아진다. 전국적으로 폐기물 소각장이 부족한 상황에서 기존 소각장 공사까지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 쓰레기 대란을 피하기 어렵다.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정부는 SOC 예산 운용에 유연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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