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스러운 그 이름, ‘고둥, 고동, 소라’[김창일의 갯마을 탐구]〈116〉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7월 23일 23시 00분


이름이란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해 사물, 현상 따위에 붙여서 부르는 말이지만 해산물은 이름 때문에 오히려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너는 ‘참’이고 나는 ‘개’란 말이여?”(김창일의 갯마을 탐구 12회)에서 언급했듯이 ‘숭어’와 ‘가숭어’ 두 종의 숭어는 참숭어가 됐다가 개숭어가 되기도 한다. 어디선가 ‘참’은 다른 곳에서 ‘개’가 되고, 여기서 ‘개’는 저기서 ‘참’이 된다. 지역에 따라 참이 개가 되고, 개가 참이 되는 것이다. 그곳에서 많이 나는 것이 참일지니, 참은 참만의 본성이 따로 있지 않다.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고둥류 역시 이름 때문에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어느 날 해산물 정보를 알려주는 웹사이트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 잘 알려진 채널 운영자였는데 참소라에 대해 설명을 했다. 부가적인 설명 없이 참소라라고 하는 게 의아했다. 그냥 참소라라고 하면 시청자의 거주지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일 터였다. 서해에서는 피뿔고둥, 동해는 갈색띠매물고둥, 제주도와 남해안 일부 지역에서는 뿔소라를 참소라라 한다.

예를 들어, 참소라 타액선의 제거 필요성을 설명한다고 치자. 일부 고둥류에는 어민들이 귀청 혹은 골, 침샘이라 부르는 타액선이 있는데 ‘테트라민(tetramine)’이라는 신경독성이 함유돼 있다. 고둥을 까서 가운데를 세로로 가르면 유백색 혹은 노란색의 타액선 덩어리가 나온다. 많은 양을 섭취하면 어지럼증, 졸음, 오한, 설사, 구토, 두통, 식은땀이 나는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동해의 참소라(표준명 ‘갈색띠매물고둥’·이하 괄호 안은 표준명)은 타액선의 양이 상당히 많아서 제거하고 먹어야 한다. 반면 제주와 남해의 참소라(소라·일명 뿔소라)는 타액선이 없다. 서해의 참소라(피뿔고둥)는 타액선이 작아서 그냥 먹는 사람도 있다. 참소라에 대해 설명할 경우 청자의 거주지에 따라 달리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앞에서 언급한 종류 외에 타액선을 없애고 먹어야 하는 고둥으로는 전복소라(관절매물고둥), 나팔골뱅이(조각매물고둥), 털골뱅이(콩깍지고둥) 등이다. 타액선 없는 고둥류는 백골뱅이(물레고둥·일명 참골뱅이)와 통조림용으로 주로 이용되는 흑골뱅이(깊은물레고둥), 범고둥(수랑), 코고동(각시수랑) 등이 있다. 이상으로 나열한 고둥류 명칭을 살펴보면 고둥, 고동, 소라, 골뱅이가 규칙 없이 혼재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소비자는 물론이고 어민들조차 혼란스러워서 잘 구별하지 못한다. 소라와 고둥은 같은 뜻으로 쓰일 때가 많다. 고둥은 연체동물문 복족강에 속하는 나사 형태의 패각을 가진 동물의 총칭으로 소라보다 넓은 개념이다. 소라는 소랏과로 분류되는데 고둥의 한 종류라 할 수 있다.

고둥이 표준명이지만 강원, 경상, 전남, 충남 등 많은 지역에서 고동이라고 한다. 언중에게 ‘고둥’보다 ‘고동’이 절대적으로 우세하다. 우해이어보(1801년)와 자산어보(1814년)에 ‘고동(古董)’, ‘고동(古蕫)’으로 적혀 있고, 동문유해(1748년), 방언집석(1778년), 한청문감(1779년) 등 거의 모든 고문헌에 ‘고동’으로 표현돼 있다. ‘고둥’은 경기 일부 방언이었으나 표준어로 채택되는 바람에 ‘고동’이 비표준어로 밀려났다. 현장에서 통용되는 용어와 괴리된 이름을 선택한 결과는 혼란이다.

#고둥#고동#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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