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우경임]의료개혁특위원장, 차라리 금융위원장이 어떤가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7월 23일 23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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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경임 논설위원
우경임 논설위원

필수의료 공백을 해소할 해법을 두고 정부와 의료계는 줄곧 평행선을 그려 왔다. 정부는 의대 증원을 통해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고, 의료계는 수가 인상을 통해 필수의료 인력 유출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의사가 늘고, 수가가 오르면 정말 호흡기를 단 필수의료를 살릴 수 있을까. 정부나 의료계 스스로도 회의적일 것이라고 본다.


정부-의료계 암묵적 담합 속 비급여 팽창

현재 필수의료 붕괴의 근저에는 ‘제2 건강보험’이 된 실손의료보험이 있다. 감기로 의사를 만나면 급여 진료이고, 수액을 맞으면 비급여 진료다. 건강보험이 가격을 정하지도, 지불하지도 않는 비급여 진료 시장은 실손보험 확대와 맞물려 급속히 팽창했다.

그 실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팀의 보고서가 보여준다. 한국의 국민 의료비는 2022년 처음으로 200조 원을 넘어섰다. 국내총생산(GDP)의 10%에 육박하는 총액도 놀랍지만, 증가 속도는 더 놀랍다. 국민 의료비는 2000년대까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절반 수준에 머물렀다. 이후 급증해 OECD를 앞질렀다. 경제 성장, 고령화라는 변수를 고려해도 한국은 특이 사례로 분류된다. 주요 원인은 17조 원에 달하는 실손보험 지출이다. 실손보험 확대 시기와 의료비 급증 시기는 정확히 일치한다.

이는 ‘공유지의 비극’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동네 의원이 수액주사, 도수치료 등 비급여 진료로 쉽게 돈을 벌자 의사들이 응급실, 수술실을 떠나기 시작했다. 보상이 적고, 워라밸까지 형편없는 필수의료 분야는 그야말로 파탄이 났다.

실손보험의 의료 시스템을 위협할 지경에 이른 데는 정부와 의료계의 암묵적인 담합이 있었다. 의사들은 진료를 볼수록 손해인 저수가를 벌충하기 위해 비급여 진료를 늘려 왔다. 보험료 인상 역풍이 두려운 정부는 사실상 이를 묵인했다. 그동안 의사는 과잉 진료로 돈을 벌고, 환자는 의료 쇼핑을 다녔다.


‘꼬리’ 실손보험이 ‘몸통’ 건강보험 흔들어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는 왜곡된 의료 시스템을 바로잡기 위한 의료 개혁 과제를 발표하고 있다. 우선 건강보험 수가를 개편해 중증·응급 환자를 다루는 필수의료에 대한 보상을 늘리겠다고 한다. 하지만 수가를 아무리 올린다 한들 비급여 진료로 인한 수익을 따라잡을 수 없다. 보험료 부담과 의료 접근성을 고려하면 그 한계도 분명하다.

기형적인 의료 보상 체계로 인해 의사가 아예 필수의료에 남으려고 하질 않는다면 상급종합병원의 체질 개선도 요원해진다. 병원에 의사가 없는데 중증 환자 비율을 높이고 전문의를 늘리겠다는 건 공상에 가깝다. 전공의들이 5개월 넘도록 복귀하지 않는 배경에는 굳이 응급실, 수술실에서 고생하지 않아도 개원하면 된다는 선택지가 남아 있어서다. 실손보험을 그대로 두고는 필수의료 살리기도, 의대 증원의 효과도 미미할 것이다.

꼬리인 실손보험이 몸통인 건강보험을 흔들고 있는데도 정부는 비급여 진료 시장을 통제하는 데 손을 놓고 있었다. 수액주사, 도수치료 같은 비급여 진료비는 병원마다 천차만별이다. 의사가 마음대로 가격을 정하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불하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그간 보건복지부는 권한이 없다며 물러서 있었고, 금융위원회는 보험료를 높이거나 지급 대상을 축소하는 미세 조정으로 손해율을 맞추는 데만 급급했다.

이제는 보건의료 체계 전반을 살피는 다른 접근이 요구된다. 의료계와 보험업계의 반발이 따를 것이다. 의료개혁특위를 금융위원장이 맡든지, 복지부가 실손보험을 맡든지 부처 간 칸막이를 넘지 못했던 관성적인 논의를 벗어나야 한다. 과감한 상상력과 실행력으로 실손보험 개혁에 나서지 않으면 의료 개혁도 성공할 수 없다.

#의료개혁특위원장#금융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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