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파전 떠올리는 이유… ‘주파수’ 때문이라는 낭설[권대영의 K푸드 인문학]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7월 25일 22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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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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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이다. 서울 경기 지방에는 며칠 전까지 비가 옹골지게 쏟아지더니만 지금은 잠시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다. 이렇게 비가 오면 사람들이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부추전이나 파전, 수제비나 칼국수로 이른바 솔푸드(soul food)라 불리는 음식들이다. 특히 1970년대 전후로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젊은 세대가 도회지로 많이 올라오고 고향에 대한 향수에 젖으면서 두고 온 고향(연인)을 소재로 부르는 노래가 인기를 끌었고, 솔푸드도 인기가 높았다. 고향에서 비가 올 때 자주 먹던 음식이었기에 누군가는 음식을 먹으며 고향의 어머니가 생각나 울기도 했다.

권대영 한식 인문학자
권대영 한식 인문학자
그러면 왜 파전이나 부추전, 수제비나 칼국수를 비 오는 날 먹었을까?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농경의 역사는 산이나 들, 바다에 나가 농사를 짓거나 수렵하는 역사로 시작되었다. 따라서 일할 때 날씨가 중요하였다. 비가 오지 않아야 논밭, 바다에 나가 일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즈음과 같이 장마철에 갑자기 비가 오거나 하루 종일 비가 오면 들에 나가 일할 수가 없었다. 농사철에 갑자기 비가 오고 밖에서 일을 못 하게 되면 동네 정자(亭子)나 어느 집으로 마실 가서 삼삼오오 서로 모여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는 등 노닥거리다가 출출해지면 준비 없이도 바로 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곤 했다. 이 음식이 수제비나 칼국수, 파전, 부추전이다. 당시엔 집 안뜰에서 파나 부추를 바로 뜯어다가 있는 밀가루에 부쳐 먹으면 됐다. 밀가루가 없으면 밀을 바로 갈아서 밀가루로 전이나 수제비를 만들어 먹었다. 정말 동네 사람들이 모여 한 끼를 때우기에는 더없이 훌륭한 음식이다.

그런데 이런 ‘삶의 역사’를 모르고 중국의 한학(漢學)이나 서양의 지식을 가지고 우리나라 음식을 이야기하려는 현학(顯學)적인 학자들이 우리 음식의 진실과 뿌리를 왜곡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많이 참고하는 포털 지식백과에는 한 지식인이 이렇게 설명한 내용이 나온다. ‘파전이 비 오는 날이면 더욱 간절해지는 이유로 기름을 두른 팬에 부침 반죽을 넣고 익힐 때 나는 기름 튀기는 소리가 빗줄기가 땅바닥이나 창문에 부딪힐 때 나는 소리와 비슷해 자연스럽게 비가 부침개를 연상시킨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심지어 ‘비 듣는 소리와 파전 부치는 소리의 주파수가 일치한다’고 설명하는 사람들까지 있다.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면 모르겠지만, 정말 비과학적이고 허무맹랑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럴듯한 데다가 특히 학문을 했다는 지식인이 이야기하니 정말 그런 줄 안다.

우리 농경 역사와 음식의 역사가 한때는 중국의 한학자들에 의해 왜곡되더니 이제는 서양 학문을 했단 사람들까지 잘못 해석하고 있다니 슬픈 일이다. 우리 솔푸드를 중국의 튀김 음식과 혼동하고 있는 것 같다. 기름에 튀기는 소리, 프라이팬, 더구나 주파수까지 운운하는 것은 사실에 맞지 않은 소리이다. 과학적으로 빗물이 땅에 부딪히는 주파수와 전 부칠 때 나는 주파수는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요리나 식품을 상대하는 사람들까지 서슴없이 이런 비과학적인 이야기를 하고 다닌다. 우리나라 식품 역사는 소설 속 낭만의 역사가 아니다. 민족이 살아온 삶의 역사이다.
#비#파전#주파수#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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