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 차관이 장관 직무를 대행하는 체제가 장기화하고 있다. 올 2월 김현숙 장관이 잼버리 사태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고 김행 장관 후보자가 각종 의혹이 불거져 낙마한 후 장관 자리가 5개월째 비어 있다. 소속 공무원 291명, 한 해 예산이 1조7000억 원이 넘는 정부 부처를, 수장을 임명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로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가부 공무원들의 동요는 여가부 폐지를 대선 공약으로 내건 정부 출범 후 시작됐다. 2022년 10월 여가부를 폐지하고 주요 기능을 다른 부처로 이관하는 내용의 정부조직법 개정이 야당 반대로 무산된 후로도 정부는 폐지 입장을 고수했다. 초대 장관에 이어 김 장관 후보자까지 “드라마틱하게 퇴장하겠다”며 부처 폐지를 재확인하자 직원들 사기는 더 떨어졌다. 이미 확정된 예산만 기계적으로 집행할 뿐 교제폭력 예방과 같은 새로운 행정 수요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일에는 사실상 손 놓고 있다는 지적이다. 소속 공무원들도 해외 연수를 계획하거나 부처 폐지 이후를 준비하는 등 일에서 마음이 떠난 상태라고 한다.
정부가 인구 정책을 총괄하는 부총리급 인구전략기획부를 신설하기로 하면서 여가부 존폐 문제가 다시 대두됐다. 인구부 기능이 아이 돌봄이나 일과 가정 양립 지원 같은 여가부의 주요 기능과 겹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달 초 인구부를 신설하는 내용의 조직개편안을 발표할 때 여가부 통폐합 문제는 빼놓았다. 야당이 여가부 폐지에 반대하므로 일단 급한 인구부 신설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여가부를 폐지도 존치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둔 채 인구부를 신설하면 여가부 기능 마비에 더해 부처 간 업무 중복으로 혼선이 빚어지고 예산과 인력만 낭비할 우려가 크다. 정부 조직을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해도 되나.
2001년 신설된 후 24년째 존속해 온 여가부 존폐 문제는 정부가 젊은 남성 표심을 겨냥해 성급하게 공약하는 바람에 남녀 갈등만 격해지고 합리적 해법 모색이 어려워졌다. 여가부는 여성의 경제활동을 돕고 여성 권익을 신장하는 등 헌법상 남녀평등 이념을 실천하는 부처다. 인구부 신설을 계기로 조직 개편이 어떻게 이뤄지든 그 기능이 효율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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