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국의 대학 평가 기관인 ‘THE(Times Higher Education)’가 발표한 올해 대학 순위에서 독일 대학들의 약진이 돋보였다. 뮌헨공대(30위)와 뮌헨대(38위), 하이델베르크대(47위) 등 8개 대학이 전 세계 100위 안에 들었다. 국내 대학은 서울대(62위) 등 3곳에 불과했다. 미국 시사잡지 US뉴스앤드월드리포트의 글로벌 대학 평가에서도 독일 대학 5곳이 100위 안에 포함됐다.
독일에선 이른바 명문대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고교 졸업생들은 ‘아비투어(대학입학자격시험)’만 통과하면 자유롭게 전공을 선택하고 진학할 수 있다. 학과별로 정원이 제한되기도 하지만 원칙적으로 결원이 발생하면 전국 어느 대학이나 자유롭게 전학할 수 있다. 베를린자유대에서 한 학기를 마친 뒤 결원이 생긴 뮌헨대로 옮길 수 있는 셈이다.
오랜 기간 평준화 정책을 고수해 온 독일 대학들은 글로벌 대학 순위에서 늘 뒤처져 있었다. 평가기관마다 편차가 있지만 많아야 한두 개 대학이 100위 안에 드는 정도였다. 독일 대학들은 고교 상위권 학생들을 엄선해 엘리트로 키우는 아이비리그, 옥스브리지와 달리 일반고 졸업생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교육하는 데 무게를 둔다. 교수 1인당 학생 수도 미국, 영국의 명문대와 비교하면 많은 편이다. 반면 대학 진학률은 2000년 33%에서 2021년 55%로 증가했다. 직장인 전형도 크게 늘렸다. 자동차 정비사로 일하다 뒤늦게 기계공학과에 진학하는 이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성적만으로 따지면 중위권 이하 진학이 크게 증가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결과는 상당히 고무적이다. 독일 대학들은 대부분 국공립이고 무상교육이라 교육의 질과 국제 경쟁력이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았다. 수십 년째 이런 지적이 이어졌지만 평준화의 원칙을 깨지는 않았다. 대학 경쟁력은 결국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급기야 독일 정부는 2005년부터 뛰어난 성과를 낼 5∼10개 대학을 선정해 지원하는 ‘우수 대학 육성 사업(Exzellenzinitiative)’을 추진했다. 1기(2006∼2012년)와 2기(2012∼2019년) 사업에 46억 유로(약 7조 원)의 예산이 투입됐고 현재 3기(2019년∼) 사업이 진행 중이다.
베를린공대, 뮌헨공대 등 명문 9개 공대는 연합체 ‘TU9’을 만들고 따로 관리했다. 학부 과정이 없어 입학하면 석사 이상의 학위를 취득해야 했던 교육 시스템도 개편해 미국과 영국 대학처럼 학사 학위 과정을 신설했다. 입학 정원제를 강화해 성적순으로 학생을 뽑는 대학도 크게 늘었다. 우수한 외국인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 영어로 진행되는 전공도 늘렸다. 그 결과 슈피겔 등 독일 유수 언론들이 “유럽 대륙 대학들은 계속 대학 순위가 처지고 있으며 상황을 개선시킬 별다른 방법도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하던 목소리가 사라졌다.
대학 순위가 고등교육의 모든 성과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대학들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경쟁력을 강화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수백 년 전통을 깨고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는 독일 대학의 사례를 본보기로 삼아야 하는 이유다. 대학의 인재 양성은 산업의 근간이다. 국내에서도 명문대와 지방대를 가리지 않고 재도약의 사례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