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니가타현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전시관을 마련했는데, 제목에서부터 왜곡된 역사 인식이 드러난다. 전시 제목은 ‘조선반도(한반도) 출신자를 포함한 광산 노동자의 생활’. 일본 정부는 원래 강제동원 피해자를 ‘징용공’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피해자의 소송이 잇따르자 동원의 강제성을 희석하기 위해 2018년부터 용어를 ‘구(舊) 조선반도 출신 노동자’로 바꿨다. 그런 용어를 버젓이 쓴 것이다.
▷전시 세부 설명엔 ‘징용’이 나오고, ‘관 알선’ ‘모집’에 총독부가 관여했다는 걸 담긴 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강제동원’ ‘강제노동’ 표현은 빠졌다. 징용과 강제동원은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맥락이 확연히 다른 말이다. 일본이 ‘당시 한반도가 일본 영토였고, 전쟁 중 자국민 징용은 강제노동이 아니다’라며 징용도 합법적이라고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선 일본 정부 대표단이 “한국인 등이 자기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강제 노역했다”고 인정한 2015년 하시마(일명 군함도) 탄광 등의 등재 때보다도 오히려 후퇴한 셈이 됐다.
▷일본 언론 보도에 따르면 ‘강제노동’ 표현을 안 넣는 걸 우리 정부가 합의해줬다고 한다. ‘해당 문구 대신 상설전시를 하고, 한반도 출신자가 1500명 있었고, 노동환경이 가혹했다는 걸 소개하겠다’는 일본 측 제안을 수용했다는 것이다. “한일이 내년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앞두고 새로운 불씨를 만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작용했다”고 한다. 반면 우리 외교부는 사전합의가 “사실무근”이라며 부인하고 있다. “강제성 표현 문제는 2015년에 정리됐고, 이번엔 협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본 언론이 오보를 낸 것이 아니라면 한일 양국 정부 어느 한쪽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외교를 과학처럼 하려고 하면 경직될 수밖에 없다”(헨리 키신저)지만 이번처럼 한쪽이 명백히 국민을 속이는 사안은 따지고 들지 않을 수 없다. 외교부 당국자는 6월 “우리 입장이 충분히 반영됐다고 판단하면 정부는 컨센서스(전원 동의) 형성을 막지는 않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우리 입장’엔 강제동원 명기가 있었나 없었나.
▷강제동원 명기를 요구하지 않았다면 그것대로 문제다. 하시마 탄광과 사도광산 등재는 별개 사안이다. 더구나 일본은 하시마 탄광 역시 ‘전체 역사를 알리겠다’는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 나아가 일본 정부 관계자가 ‘정부는 강제노동이 아니라는 입장’이라고 계속 언론에 흘리고 있다. 일제 징용은 국제노동기구가 1999년 이미 강제노동이라고 인정한 사안이다. 관계 개선도, 미래 지향도 무엇보다 올바른 역사인식이 바탕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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