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유별난 무더위가 찾아올 것 같다. 그래도 수은주의 숫자로는 중동의 뜨거움을 따라잡지는 못한다. 중동 사람들도 더위는 견디기 힘들어서 아프리카인들을 잡아 와 농사일에 노예로 부렸다. 이들은 중동보다 더 더운 곳에 살고, 피부도 검으니 자신들보다 더위를 잘 이겨낼 것이라고 믿었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팽유격의 휘하에 흑인 병사가 한 명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그 병사를 바다귀신이라고 기록했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는 수영의 귀재로 바닷속에 잠수해서 적선을 공격할 수 있고, 며칠 동안 물속에서 살 수 있다는 어이없는 이야기를 기록했다.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이 햇빛에 그을려 피부가 검어지니까 피부색이 검은 만큼 바다와 물에 더 적응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조선 후기에 청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사람이 러시아인을 보았다. 백병전의 시대였다. 하얀 피부와 거대한 체격이 인상적이면서 공포감을 주었다. 청은 시베리아 지역에서 러시아와 국경분쟁을 벌이던 중이었다. 조선도 효종 때에 이 전투에 정예군을 파견한 적이 있었다. 사신이 물었다. “저런 체격을 가진 사람들과 전쟁을 어떻게 합니까?” 청나라 관원이 웃으며 말했다. “전술로 싸우면 됩니다.” 근육이 남달리 발달한 사람은 상대적으로 두뇌가 발달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대표적인 편견의 하나인데, 청나라에는 이런 믿음이 광범위하게 퍼졌던 모양이다. 하긴 한중일 3국에서 100년 가까이 유행하고 있는 믿음이 서양인은 육체가 강하고 동양인은 정신이 강하다는 낭설이다.
인류의 지성사는 편견의 역사이다. 위인의 저서에서 거리의 유머까지 편견이 없는 곳이 없다. 인터넷이 등장했을 때, 정보사회가 이런 편견을 해소해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인 듯하다. 사회의 갈등과 분쟁에는 언제나 그런 편견이 선두에 있다. 이제 이 문제에 모두가 심각하게 고민을 시작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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