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유튜브 채널에는 버스 기사가 고속도로에서 경험한 황당한 목격담이 소개됐다. 고속도로 1차로를 달리고 있는데 앞에서 신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비틀비틀 저속 주행하고 있었다. 상향등을 켜고 경적을 울리며 주의를 줬지만 변화가 없었다. 차로를 바꿔 추월하면서 살펴보니 운전자는 주행보조 시스템을 켜놓은 채 잠이 들어 있었다. 최근 들어 주행보조 기능만 믿고 운전을 태만하게 하다 사고를 유발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한다.
▷운전자들이 장거리 주행 때 즐겨 활용하는 대표적 주행보조 장치가 ‘크루즈 컨트롤’로 불리는 ‘적응형 순항 제어 기능(ACC)’이다. 전방 차량을 인식해 앞차와의 거리를 유지하고, 운전자가 설정한 속도로 주행하게 도와준다. 자율주행 1∼5단계 중 2단계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제조사마다 현대차·기아는 SCC(스마트크루즈), 일본 도요타는 DRCC(다이내믹 레이더 크루즈), 미국 테슬라는 AP(오토 파일럿) 등으로 명칭이 다양하다.
▷운전자들이 ACC에 지나치게 의존해 전방 주시를 게을리하다가 돌발 상황에 대응하지 못해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2020년부터 올해 7월까지 고속도로에서 ACC 이용 중 19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해 17명이 사망했다. 올해에만 8건의 사고로 9명이 숨졌다. 5월 호남고속도로에서도 교통사고 현장 관리 중이던 한국도로공사 순찰차를 뒤따르던 승용차가 추돌해 공사 직원이 사망했는데, 가해 차량이 ACC 작동 상태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ACC는 건조한 노면과 평지, 일반적인 중량을 기준으로 설정돼 있기 때문에 비나 눈, 안개와 같이 기상 상황이 좋지 않은 경우 카메라와 센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젖은 노면에서는 제동 거리가 늘어나 앞차와의 거리 유지가 어렵다. 탑승자가 많아 차량 무게가 늘어난 경우나 내리막길, 굽잇길에서도 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크다. 앞선 차량의 속도가 느리거나 정차한 경우, 공사 중이거나 사고 처리 중인 경우에 제때 속도를 줄이지 못해 추돌할 수 있다. 사용 설명서에 적힌 인식 제한 상황을 미리 확인해야 한다.
▷미국 고속도로안전보험협회(IIHS)와 고속도로사고데이터연구소(HLDI)가 보험 데이터와 사고 기록을 분석해 보니 주행보조 시스템을 장착했다고 해서 충돌 보상 청구율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감소하지 않았다. IIHS는 “주행보조 시스템이 거짓된 안정감을 주고 지루함을 유발해 운전자가 집중력을 잃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안전기능이 아닌 전동 창문이나 열선 시트 같은 편의기능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결국 안전 운전을 책임지는 것은 운전자 자신임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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