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좋아, 아∼ 내 사랑은 남풍을 타고 달려가요∼(あなたが好き, あ∼私の恋は 南の風に乗って走るわ∼).’
일본 가수 마쓰다 세이코(松田聖子)가 1980년 데뷔 후 두 번째로 발표한 ‘푸른 산호초(青い珊瑚礁)’의 한국 내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올해 6월 말 도쿄돔에서 열린 K팝 그룹 뉴진스의 팬미팅 이벤트에서 멤버 하니가 ‘푸른 산호초’를 사랑스럽게 부른 뒤 일어난 파장이다.
‘푸른 산호초’는 현재 일본의 빌보드 저팬이 발표한 차트 ‘Global Japan Songs excl. Japan’에서 3주 연속 10위 안팎의 성적을 기록했다. 이 차트는 (일본 기준) 해외에서 히트하는 일본 노래의 랭킹인데, 국가별로 보면 한국에서 6월 28일∼7월 11일 2주 연속 2위를 달리다가 12∼18일에 1위를 기록했다. 44년 전 내가 불렀던 노래를 한국 사람들도 부르고 좋아한다니 놀랍고 신기하기만 하다.
1980년에 데뷔한 그녀는 6월부터 일본 전국 콘서트 투어를 진행하고 있으며 9월 초까지 계속할 예정이다. 입장권은 늘 하루 만에 완판된다. 콘서트 영상을 보면 곳곳에서 “세이코 짱∼”을 외치는 소리가 울린다.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그득하다. 만 62세의 그녀는 지금도 틀림없는 현역 아이돌이라 하겠다.
그녀는 나보다 한 살 적어 우리는 또래로 같은 시대를 살아왔다. 1980년 그녀의 데뷔 당시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해 홀로 집을 떠나 도쿄의 디자인 회사에서 일했다. 내가 처음부터 팬이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그녀를 좋아하는 친구를 따라 노래를 부르다가, 노래와 살아가는 모습에 힘을 받아 용기를 얻게 됐다.
한국에서는 하니의 ‘푸른 산호초’에 대한 일본 반응을 ‘풍요로운 버블 경제 시기를 떠올리게끔 해서’라고 한다. 하지만 당시가 풍요로운 시기는 아니었다. 버블 경제의 풍요로움을 맛볼 수 있는 시기는 그때부터 5∼6년 후인 1986년부터 1990년경이다.
일본은 1945년 패전 후 부흥의 시기를 거쳐 1955년경부터 고도 성장을 시작한다. 그러나 1972년 1차 석유 위기로 성장이 멈추고 물가는 급등했다. TV, 냉장고, 자동차 등의 소유율이 높아지면서 어느 정도 생활 수준은 올라갔지만 그간 무리한 개발로 사회문제와 공해가 촉발됐다. 많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남존여비의 구태의연한 기존 세대의 사고방식이 사회를 지배했고 부모님과의 소통이 어려웠다. 특히 내가 살던 시골은 보수적인 경향이 여전했고, 여성의 사회 진출이 쉽지 않았다.
내 경우도 대학 진학을 원했지만 완고한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혔다. 집에서 다닐 수 있는 국립대, 게다가 약대나 간호학과가 아니면 등록금을 내주지 않겠다고 하셨다.
그런 시대 속에서 등장한 게 마쓰다였다. 마쓰다 또한 아버지가 연예계 진출을 반대하는 바람에 설득을 거듭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서야 데뷔했다. 처음에는 귀엽고 노래를 잘 부르는 ‘잠깐 등장했다 사라지는 아이돌’인 줄 알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사회의 기존 가치와 싸우는 의연한 여전사임을 드러냈다.
데뷔 당시 별명은 ‘귀여운 척하는 아이’라는 의미의 ‘부릿코(ぶりっこ)’였다. 여성보다 남성 팬이 더 많았다. ‘세이코 짱 컷(聖子ちゃんカット)’이란 헤어스타일이 유행하기도 했다. 1985년에 결혼하고 이듬해 엄마가 되며 서서히 대중의 기대를 벗어나는 듯했다.
그녀는 엄마가 되었어도 가수 활동을 멈추지 않아 ‘원조 마마돌(ママドル)’이라고 불렸다. 그러곤 데뷔한 지 10년째 되던 해 홀로 미국으로 떠났다. 두 번의 이혼과 재혼도 했다. 한때 사회적으로 심한 비난도 받았지만 변명 한마디 하지 않고, 계속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며 노래했다. 그런 모습이 동시대에 사는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인내, 순정을 강요받아 온 여성들에게 마쓰다는 노래와 미모를 무기로 사회의 기존 가치에 대항하며 싸우는 여전사 그 자체였다. 나 역시 그런 그녀를 보며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그녀는 ‘성장하는 아이돌’의 상징이다. 사실 2021년 12월 그녀는 외동딸을 잃으며 많은 사람의 걱정을 자아냈다. 하지만 올해 3월, 그 시간 동안 홀로 대학에서 공부하며 법학부를 졸업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다시 우리를 놀라게 했다.
마쓰다는 내년에 데뷔 45년을 맞이한다. 하니의 노래를 계기로 ‘끊임없이 성장해 나가는 아이돌’ 마쓰다의 노래와 지치지 않고 세상과 투쟁해 온 여전사 같은 그녀의 일면도 함께 기억해 준다면 기쁠 것이다. 나도 그녀처럼 통쾌하게 세상을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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