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그제 90분간 만났다.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도 배석했지만, 사실상 독대와 많이 다르지 않았다. 윤 대통령이 여당의 새 지도부를 불러 대통령실 잔디광장에서 만찬을 한 지 6일 만이다. 지금 여권에서 가장 민감한 이슈는 총선 전부터 불거진 윤-한 갈등을 봉합하는 일에, 두 사람이 의기투합할 수 있느냐다. 한 대표가 제안한 90분 회동은 가능성을 엿볼 기회였다.
▷대통령 가족과 여권을 옥죄는 민감한 이슈를 논의하는 자리였지만, 회동 형식에서 묘한 긴장감이 감지됐다. 대통령-당 대표 회동은 통상 만남 첫 2, 3분을 언론에 공개한다. 대통령 집무실 회동일 때는 거의 예외가 없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언론은 물론 용산 참모 대다수에게도 알리지 않고 만났다. 오전 11시에 만나면서 각각 점심 약속을 취소하지 않았다. 낮 12시 반까지 대화가 이어졌지만 “점심 함께 하면서 더 이야기하자”는 제안은 없었다. “화기애애했다”는 용산 대변인 설명과 실제 상황은 거리가 있었을 거란 짐작이 가능하다.
▷90분 회동치고는 브리핑이 짧았다. 양쪽 설명을 종합하면 윤 대통령의 메시지는 2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당 인사들을 포용하고 경청함으로써 한동훈의 사람을 만들라는 것이 하나고, 당직 개편 등 당무는 한 대표가 책임지고 잘하라는 것이 다른 하나다. 그러나 이걸 두고도 국민의힘 내 친한-친윤 그룹은 제각각으로 해석했다. 친한은 당 대표 주도권을 인정해 줬다고 말했고, 친윤은 친윤 포용과 경청이 대통령의 진짜 생각이라고 풀이했다.
▷90분 만남 평가는 정점식 당 정책위의장이 유임하느냐, 교체되느냐에 달렸다는 게 중론이다. 검사 출신으로 친윤 핵심인 정 의장의 1년 임기는 10개월 더 남았지만, 과거 정책위의장은 새 당 대표가 새로 뽑았다. 이 자리가 중요한 이유는 9명으로 구성되는 최고위원회 구성 때문이다. 현재 4 대 4인 친한 대 친윤의 구도가 정 의장 교체 여부에 한쪽으로 기울어지기 때문이다. 윤-한은 당직 개편도 논의했다. 한 대표가 교체를 강행한다면 대통령이 한동훈 당 주도를 용인했다는 뜻이 될 수 있다.
▷독대나 다름없던 90분 회동의 특징은 과거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만날 때 있었던 ‘따로 만남’이 없었다는 점이다. 통상 대통령은 여당 지도부와 식사를 한 뒤 20분(문재인-송영길) 정도 1 대 1 진짜 독대를 갖는다. 갈등이 컸던 박근혜-김무성 체제 때도 19분, 때론 단 5분 정도라도 밀담을 나눴다. 하지만 독대인 듯 독대 아닌 90분 회동은 대통령과 한 대표가 아직은 준비가 덜 됐거나, 독대 후 터져 나올 다양한 정치적 해석이 부담스럽다는 뜻일 수도 있다. 윤-한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라는 시각은 여전히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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