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홍 칼럼]발밑 얼음 다 녹는 걸 모른 채… 尹대통령의 세 가지 착각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8월 1일 23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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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공간 좌익 사보타주, 인민재판 DNA
연상케 하는 野의 방통위 무력화 시도
尹, 위기 직시하고 등 돌린 민심 경청해
임기 후반기 리더십 대전환 결단해야

이기홍 대기자
이기홍 대기자
본격 휴가철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곧 휴가를 떠날 것으로 전해진다. 윤 대통령에게 이번 휴가는 특별한 의미의 시간이 되어야 한다. 휴가가 사치로 여겨질 만큼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윤 대통령과 측근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비록 지지율은 낮지만 지금까지 기조대로 열심히 일해 가면 임기 후반기를 무난히 마치고 퇴임 후엔 나라 바로잡기 등 공적을 높이 평가받을 것으로 여기는 것 같다.

착각이다. 임기 전반기처럼 후반기를 보낸다면 윤 대통령은 가장 무능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우려가 크다.

물론 훨씬 더 무능하고 퇴행적인 세계관으로 나라 기틀을 부수고 민생과 국가재정을 망가뜨린 부족장 수준의 좌파 대통령도 있었지만, 좌파는 무조건 자기편 역사를 미화한다. 반면 우파의 거울은 상대적으로 훨씬 객관적으로 반영하기 때문에 역사의 평가는 혹독할 것이다.

기억 속에서 김건희 여사 관련 대목들만 부각되고, 윤 대통령 본인은 국가비전과 국정철학조차 모호한 채 불통과 아마추어 이미지만 남을 수 있다.

한미동맹 강화, 한일관계 정상화 등 국가 궤도 바로잡기는 평가받아 마땅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윤석열표 업적이 아니다. 다른 보수 대통령이어도 당연히 했을 일이기 때문이다.

나라 궤도 바로잡기도 미완성이다. ‘문재인 의혹’은 하나도 건드리지 못했고, 문 정권이 망가뜨린 국가정보원 등 안보 시스템도 무기력 상태 그대로다.

이런 비판적 채점이 맞는지, 잘해 오고 있다는 자체 평가가 맞는지 새로 생긴 민정수석실이 허심탄회하게 바닥 민심을 청취해 오라고 지시해 보길 바란다.

최근 경남 의령의 지인으로부터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평생 골수 보수로 지내온 시골 노인분들의 대화 내용이다. “윤석열은 그렇게 술만 먹는다며?” “난 범죄자 이재명이라도 받아들일 각오가 돼 있어”….

밤늦게까지 보고서와 씨름하며 지낸다는 대통령으로선 억울하기 그지없겠지만 시중 민심은 이런 게 현실이다. 이런 민심의 반영이 당심과 민심 모두 한동훈 압승으로 나온 전당대회 결과다. 보수 주류에서 윤 대통령은 사실상 버림을 받은 것이다. 여당에 뿌리도 없는 상태에서 아내만 감싸며 보수의 여망을 저버린 자업자득이다.

여당에 뿌리가 없기는 한동훈 대표도 마찬가지지만 그는 보수 회생을 바라는 여망에 올라타 있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보수 민심이 윤 대통령을 완전히 버리고 가자는 것은 아니다. 한 대표가 그걸 혼동하면 그 역시 버림받게 된다. 보수는 오로지 보수를 살릴 길을 택하는 쪽에 열망을 모아줄 뿐이다.

윤 정권의 또 하나 착각은 의료개혁 등을 밀어붙이면서 미국 레이건 대통령 시절 관제사 파업 대응, 영국 대처 총리 시절 탄광노조 파업 대응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두 사례는 지도자가 소신과 결단력으로 법과 원칙을 지켜 집단이기주의를 극복한 전범(典範)으로 통한다.

하지만 의료개혁 문제를 다루는 윤 정권의 태도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대처는 인도에서 수년 치 석탄을 수입해서 비축했고, 레이건은 파업 관제사를 대체할 인력을 충분히 확보해 대응했다. 평소 유머와 소통의 달인이었던 레이건이 취한 단호한 태도가 국민에 주는 호소력과 윤 대통령의 단호한 표정이 주는 느낌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의사들을 변화시킬 백업 수단이 없는 상태에서, 의료개혁에 필요한 수많은 요소 중 하나에 불과한 증원만 강조하며 ‘2000명’이라는 말뚝을 박아버린 것은 칭송받을 소신과 결단력이 아니라 무모한 단순화, 고집과 다름없다. 그 결과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 의료시스템 전체가 위험에 빠진 것이다.

복잡다단한 사안을 충분한 사전 준비와 종합적 프로그램 없이 밀어붙이다 거대한 부작용에 맞닥뜨린 현실을 인정해 유연성을 회복하는 것도 ‘기득권 세력 저항에 타협하지 않는 소신’ 만큼 용기 있는 일이다.

윤 정권의 또 하나 착각은 국민을 쉽게 설득당하는 상대로 여긴다는 점이다.

명품백 문제에 대해 “매정하게 끊지 못해 아쉽다”는 KBS 대담 발언에 이어, “돌려주라 했는데 행정관이 깜박했다”는 최근 설명, 김 여사 출장 조사를 “현직 영부인 첫 조사”라고 의미부여하는 모습 등은 다 국민을 어수룩한 상대로 본 산물이다. 이런 해명들이 나올 때마다 상당수 보수층은 한숨을 내쉰다.국민 눈높이에 못 미친다는 표현은 점잖은 것이고, 시중에서 도는 표현은 “국민을 바보로 여기나 봐”라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백척간두, 녹아가는 유빙(遊氷) 위에 서 있다. 좌파 세력의 극악스러움과 자금력 동원력은 최고점을 찍고 있다.

야당의 집요한 방통위 무력화 시도는 8·15 광복 직후 좌익이 툭하면 사보타주로 생산시설과 국가시스템을 마비시키던 장면들을 연상시킨다. 상임위와 이진숙 청문회에서 야당 위원장들의 행태에는 인민재판과 문화혁명 때의 조리돌림 장면을 연상시키는 대목이 있다. 습도가 높아지면 곰팡이가 피어오르듯, 잠복해 있던 DNA가 윤 정권의 실정과 국회 189석이라는 습도를 타고 발현되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사면초가를 극복할 길은 하나다. 임기 전반기와 정반대로 하는 것이다. 즉, 싫어하는 사람 얘기를 듣고, “안 된다”고 반대하는 사람을 가까이하고, 혼자 결정하지 말고 중의(衆意)를 모으면 된다.

명연설로 유명한 처칠은 연설문 작성전 보좌관들을 런던 시내에 풀어서 국민이 가장 궁금해하는게 뭔지, 불만이 뭔지, 당장 총리가 눈앞에 있으면 어떤 얘기를 하고 싶은지를 물었다.

임기 반환점이 불과 석 달 남았다. 지난 2년 3개월이 완행열차였다면 임기 후반은 고속열차처럼 시간이 흘러갈 것이다. 윤 대통령의 휴가는 전반기 참담한 실패 원인을 냉철히 들여다보고 대전환의 구상을 다듬어 새로운 리더십으로 거듭나는 결단의 시간이 되어야 한다.

#윤석열#대통령#착각#휴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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