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증원이 확정된 의대 30곳에 대한 평가·인증을 강화하겠다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의 방침을 두고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대학 총장들은 평가 기준 변경이 무리한 요구라고 반발했고, 교육부도 즉각 유감을 표시했다. 의대 교수들은 “최소한의 검증”이라며 총장 탄핵까지 주장해 의정 갈등이 학내 갈등으로 격화하고 있다.
의평원은 내년 입학 정원이 10% 이상 늘어난 30개 의대에 대해 앞으로 6년간 매년 주요 변화 평가를 실시하겠다고 예고했다. 내년 입학한 의대생이 졸업할 때까지 연차별로 의학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는지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평가 기준도 기존 15개에서 51개로 늘렸다.
대학 총장들은 의대생이 학교를 비운 특수한 상황에서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고 반발한다. 경북대는 “의대생 복귀 3개월 이후 평가에 응하겠다”며 사실상 보이콧 선언을 했다. 교육부는 의평원 평가 기준을 심의해 보완을 요구할 수도 있다고 했다. 반면, 의료계는 정부와 대학이 최소한의 검증조차 거부한다며 의평원을 거들었다. 가톨릭대 고려대 서울대 성균관대 연세대 울산대 등 6개 의대 교수는 “졸속 의대 증원을 자인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의정 갈등이 의대 평가로 전장을 옮겨 장기화할 조짐이 보이자, 내년 대입을 준비하는 수험생들 사이에선 “의평원 평가·인증을 받지 못한 의대에 입학했다가 의사가 못 되는 거 아니냐”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의평원 평가에서 한 차례 탈락하면 재평가를 받는다. 재평가에서도 인증을 받지 못하면 신입생 모집이 중단되거나 해당 연도 의대생은 의사 국가시험에 응시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교육부는 의평원의 독립성을 흔들 것이 아니라 교수와 시설 확보 등 의대 교육의 질을 끌어올릴 의대 선진화 방안부터 내놓아야 한다. 당초 6월 예정됐던 이 대책이 9월로 미뤄지면서 대학들은 교육과 재정 계획을 제출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미룬 채 의평원을 압박할수록 의대 증원 정책에 대한 신뢰도만 낮아진다. 의료계도 정부의 실책을 비판하는 데 몰두한 나머지 의대 교육 정상화를 위한 해법 제시 없이 수험생의 불안만 자극해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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