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상반기 가격개입 70여 회… ‘팔 비틀기’만으론 물가 못 잡는다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8월 2일 23시 30분


26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한 시민이 계란을 고르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축산물품질평가원 등에 따르면 지난 24일 기준 계란(특란) 한 판(30구)의 소비자가격은 6696원으로 전년(6309원)보다 6.1%, 평년(6069원) 대비 10.3% 올랐다. 정부가 물가안정을 위해 계란 산지가격 인하를 업계에 요청했지만 산란계협회가 전월보다 소폭 올린 가격을 고시하면서 소비자가격도 함께 상승했다. 2024.6.26/뉴스1

지난달 소비자물가가 전년 동월 대비 2.6% 올랐다. 6월까지 3개월 연속 하락하던 상승률이 ‘도깨비 장마’와 중동 정세 불안의 영향으로 반등한 것이다. 농산물 가격은 9%나 올라 국민이 체감하는 물가는 더 높은 상태다. 정부는 ‘물가 관리에 손을 놓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려고 기업에 대한 물가 동결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팔 비틀기’식 물가 관리는 지표를 잠깐은 끌어내릴 수 있어도 실제 효과가 거의 없다는 게 문제다.

올해 상반기에 정부 부처들이 기업에 가격 동결, 인하를 요청한 횟수만 70여 회다. 매주 2, 3회꼴로 개입이 이뤄졌다. 4·10총선을 앞두고 ‘대파 파동’을 겪은 농림축산식품부는 식품, 외식, 제분·제당 업체들에 수시로 가격 동결을 압박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유통, 정유업계를 대상으로 물가를 집중 관리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제품 용량을 줄여 가격을 편법으로 올리는 ‘슈링크플레이션’을 차단하겠다며 현장 조사를 강화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기승을 부릴 때 정부가 물가 관리에 나서는 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가격을 억지로 누르는 일이 일상화하고, 기간까지 길어질 경우 수익성이 악화된 기업들이 반발해 가격 인상에 나서면서 인플레 종료 시점이 오히려 늦춰지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게다가 이번 인플레이션은 글로벌 이상기후, 중동사태 등 대외적인 공급 문제가 주요 원인이어서 국내 시장에 대한 통제의 효과는 대단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정부 눈치를 보느라 인상을 자제해온 기업들 가운데 오른 원자재, 인건비를 제품 값에 반영하는 곳이 요즘 속출하고 있다. 하마스 최고 지도자 암살 사태로 중동 정세가 악화하면서 국제유가도 다시 요동치고 있다. 한국전력의 천문학적인 적자 때문에 더위가 걷힌 뒤에는 전기요금 추가 인상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9월 기준금리 인하를 사실상 예고했다. 한국은행이 따라서 연내에 기준금리를 낮출 경우 유동성이 증가해 이번엔 수요 측면의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질 것이다.

대내외 상황이 달라진 만큼 정부의 물가정책도 방향을 바꿔야 한다. 부작용이 불가피한 인위적 가격 개입을 최소화하고, 체감 물가에 영향이 큰 농산품 등의 공급 확대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금사과 사태’를 교훈 삼아 국내 생산만으로는 수급이 불안정한 상품의 수입을 적극 검토하는 한편 지지부진한 유통구조 개선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


#소비자물가#물가 관리#정부 물가 개입#물가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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