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유종]UAE 왕립병원 운영 10년… ‘중동의 서울대병원’ 늘려야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8월 4일 23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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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종 정책사회부 차장
이유종 정책사회부 차장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도심에서 북동쪽으로 약 70km.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 서울대병원이 10년째 위탁 운영하는 왕립 셰이크칼리파전문병원이 있다. 248병상 규모로 전체 의료진 800명 중 한국인만 100명이 넘는다. 서울대병원은 2014년 미국 스탠퍼드·존스홉킨스, 영국 킹스칼리지, 독일 샤리테 등 글로벌 병원들과 경쟁해 계약을 따냈다. 국내 병원이 해외 종합병원급 의료기관의 위탁운영권을 따낸 첫 사례다. 초창기 5년간 1조 원의 운영예산이 책정됐고 별도로 연간 70억∼80억 원의 위탁운영 수수료도 받았다. 운영 2년 만에 외래환자가 5만 명을 넘었다. 2019년 재계약에 성공했고 이달 중순 2번째 재계약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될까. 일단 이번 재계약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이 병원은 왕실 산하인데 다른 왕실 산하 기관이 위탁운영을 맡겠다고 나서며 갑자기 경쟁 구도가 형성됐다. 또 왕실 측이 병원에 운영비 절감을 강하게 요구하면서 병원 수익성도 낮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심장, 뇌신경, 암에 집중하고 다른 진료 과목을 구조조정하란 요구도 있었다. 전문병원이라고 해도 일정 부분 종합병원 기능을 유지해야 하는데 수요가 많은 정형외과, 안과를 없애라고 하니 전체 환자가 줄고 수익에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운영 초기와 비교하면 한국인 의료진도 많이 줄었고 진료비 삭감, 의료 분쟁 등 크고 작은 불협화음도 있다. 이런 이유로 서울대병원 내부에선 그만두자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등 걸프협력회의(GCC) 6개 회원국의 헬스케어 시장은 679억 달러(약 92조 원)에 달했다. 중동 부국들은 메이오클리닉, 존스홉킨스, 클리블랜드, 하버드 등 선진국 유수의 병원과 의대를 유치하며 현지 의료 수준을 높이고 의료관광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UAE만 해도 2022년 의료관광객 67만4000명을 유치해 10억 디르함(AED·약 3700억 원)을 벌어들였다. 현지에 진출한 글로벌 의대와 병원들은 임상연구, 교육, 진료 각 분야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시장이다.

병원 수출을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는 여전히 많다. 한국 의료에 대한 현지인들의 인식이 크게 바뀌고 있긴 하지만 같은 조건이면 여전히 미국과 유럽 병원을 선호하고 있다. 외국인 환자들과 쉽게 영어로 소통하며 진료할 수 있는 의사와 간호사도 부족한 실정이다. 해외 진출 사례가 많지 않다 보니 국가별 상황별 노하우 축적도 필요하다. 상호 의료진 면허 인정, 의료사고 문제 등 현실적인 과제도 많다.

올해 6월 카타르 도하에는 10층 규모의 ‘한국의료센터’가 문을 열었다. 서울아산병원, 라임나무치과, JK성형외과, 안강병원 등이 불임, 임플란트, 미용성형, 재활 등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서울아산병원은 2026년 개원을 목표로 두바이에 65병상 규모인 ‘UAE아산소화기병원’도 추진하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은 지난달 300병상 규모의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종합병원 프로젝트에서 사업 총괄을 맡았다. 의료 해외 진출은 경제적 측면에서도 이득이지만 국격을 높이고 양국 협력에 기여하는 외교적인 역할도 한다. 제2, 제3의 왕립 셰이크칼리파전문병원이 앞으로 더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

#uae#왕립병원#중동#서울대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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