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를 거부하는 이유[임용한의 전쟁사]〈327〉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8월 5일 23시 00분



1∼4차 중동전쟁의 주역 국가는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었다. 현재 이스라엘과 싸우는 상대는 팔레스타인, 이란, 헤즈볼라, 후티다. 전면전이든, 미사일 공격이든, 테러든, 이들의 갈등은 형태를 바꾸면서 오래 진행될 것 같다. 당장 휴전이나 어떤 가시적인 중재가 있다고 하더라도 무엇에 의한 폭발이든 폭발음이 완전히 멎을 것 같지는 않다.

전쟁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전쟁보다는 양보와 대화로 해결하자는 원칙에 다들 동의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일어난다. 왜 그럴까? 대화와 양보로는 얻을 수 없다고 생각되는 무언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무언가는 참 여러 가지 단어로 표현된다. 정의, 생존, 번영, 신의, 미래, 영토, 자원, 보호, 안전, 응징, 보복, 자존심, 나아가 진정한 혹은 항구적인 평화도 있다. 누구도 탐욕, 정권, 권력욕, 명예, 재산, 기만, 선동, 이기심이 이유이자 목적이라고 얘기하지 않는다.

진실로 내가 정의고 합당한 이유와 명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전쟁은 피와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다. 게다가 한 번 흘린 피는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다. 이런 지적을 하면 마지막 논리가 있다. “우리도 안다. 하지만 이 상황과 이 분노, 이 한은 대화와 양보로 해결할 수 없다.”

막상 전쟁을 치르고 나면 이 부분을 반성하는 경우도 많다. 양보와 타협의 여지가 많았는데, 우리가 보지 못했다고 말이다. 현재의 중동은 이게 불가능하다. 그래서 어떤 방식이든 편과 이유를 바꿔 가면서 최소 한 세대는 포성이 그치질 않을 것이다.

답을 찾을 수 없는 중동이 답답하다면 우리 사회의 갈등은 어떨까? 엄청난 여지가 있음에도, 정치와 선동이 이를 거부한다. 땅이 없어서 울부짖는 것이 아니라 땅이 있는데 눈과 귀를 가리고 분노한다. 이런 상태가 이미 한 세대를 경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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