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야당 의원과 보좌진, 언론인 등의 통신이용자 정보 자료를 대거 조회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재명 전 대표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 10여 명은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에서 1월 4일 성명과 전화번호 등의 정보를 통신사에서 제공받았다’는 검찰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고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공개했다. 민주당을 취재하는 기자 등도 검찰로부터 통지를 받았다.
이번 통신조회는 이른바 ‘대선 개입 여론조작 의혹’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이뤄졌다고 한다. 대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언론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부산저축은행 수사를 무마해줬다’는 취지의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 인터뷰 내용을 보도했고, 이에 따라 윤 대통령의 명예가 훼손됐다는 사건이다. 대형 비리 사건도 아니고 현직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을 이유로 검찰이 언론사와 기자들을 잇달아 수사한 것도 모자라 언론인의 통신자료를 무더기로 조회하고 이들과 통화한 사람들의 인적 사항까지 파헤친 것이다.
이렇다 보니 이 사건과 무관한 일반인들도 관련 정치인이나 언론인과 통화한 적이 있다는 이유로 조회 대상에 여럿 포함됐다고 한다. 검찰이 통신조회를 한 사람이 3000명에 이른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느닷없이 검찰로부터 통신조회 통보를 받은 이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언론단체들이 “윤 대통령 심기 경호를 위해 범죄 혐의도 없는 수천 명의 기본권을 유린한 것”이라고 지적하는 이유다.
통신조회는 법원의 영장 없이 가능하지만 통화 내역까지는 확인할 수 없다. 그렇다고 검찰 주장처럼 단순한 수사상의 절차는 아니다. 통신조회를 하면 평소 누구와 통화를 하는지가 드러나기 때문에 기자의 취재원, 정치인의 인적 네트워크 등을 검찰이 고스란히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언론 자유가 침해되고 정치 활동이 제약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래서야 전화 한 통 마음대로 할 수 있겠나. 더욱이 검찰이 보낸 메시지에는 사용 목적을 ‘수사’라고만 적어서 당사자들은 조회 이유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검찰이 통지 기한의 예외 조항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7개월이 지나서야 알린 것도 문제다.
윤 대통령은 2021년 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본인과 김건희 여사 등의 통신자료를 조회한 사실이 드러나자 “미친 사람들 아니냐”, “(공수처장을) 당장 구속 수사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검찰의 마구잡이 통신조회에 대해서도 같은 잣대를 적용해 엄정하게 조치해야 한다. 검찰이 무슨 근거로, 누굴 대상으로, 정확히 몇 명을 조회했는지부터 투명하게 밝히는 게 그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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