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창인 올림픽 같은 스포츠 경기에서 가끔 볼 수 있는 이상한 장면이 있다. 좋은 결과를 위해 있는 힘, 없는 힘 다하다 보니 곧 죽을 것처럼 흐느적거리던 선수들이 승리가 확정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펄펄 뛴다. 대형 국기를 들고 그 넓은 경기장을 몇 바퀴씩 도는 경우도 심심찮다. 체중이 몇 kg씩 빠진다는 경기를 뛴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아니, 그럴 힘이 있으면 경기에 더 쏟았어야 하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 정도다. 대충 뛴 건 아닐 텐데, 한둘도 아니고 모든 선수가 이러는 이유는 뭘까? 승리의 순간 솟구친다는 아드레날린만으로는 뭔가 미흡하다. 호르몬은 신호 전달 역할을 할 뿐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가진 몸의 기능은 모두 오랜 시간 진화라는 테스트를 거친 것이다. 어떤 환경에서도 잘 살아남을 수 있도록 조상들이 개발한 능력들 중 효과가 있다고 검증된 것들이 지금 우리 몸에서 작동한다. 이 중에는 이 세상이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곳이기에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는 기능도 있다. 진화 생리학에서 ‘중앙 통제자(central governor)’라고 하는 것인데, 쉽게 말하면 우리 의식이 모르는 힘을 우리의 무의식이 남겨두고 있다는 것이다.
자, 지금 사냥을 한다고 생각해 보자. 실패하면 굶어 죽을 수도 있기에 최선을 다한 덕분에 큼지막한 사냥감을 획득했다. 원하는 걸 얻었으니 이제 ‘상황 끝’이고 즐거워할 일만 남았을까?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돌아가는 길에 사자나 호랑이 같은 맹수를 만날 수도 있고, 사냥감을 추격하느라 너무 멀리 간 바람에 생각지도 못한 생고생을 할 수도 있으며, 적의 기습을 받아 모든 걸 잃을 수도 있다. 완전한 ‘상황 끝’이 아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런 일을 수없이 당했을 것이고 대비책을 마련해야 했을 것이다. 어떻게? 만에 하나를 위해 힘을 조금 남겨두는 것으로.
그뿐만 아니라 죽기 살기로 하다 보면 힘을 다 써 버려 진짜 죽을 수도 있기에 우리 뇌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적당한 한계를 설정해 ‘이제 힘이 없다’는 신호를 온몸에 보낸다. 우리가 죽을 것같이 힘들다고 느끼는 때다. 하지만 진짜 끝이 보이면 뇌는 ‘비상 식량’처럼 아끼고 있는 힘을 푼다. 녹초가 되어 탈진한 것처럼 헉헉대던 선수들이 펄펄 뛰는 순간이다. 상황 끝이니 힘을 남겨 놓을 이유가 없다. 여느 본능과 마찬가지로 오랜 시간 이런 노력을 지속하다 보니 우리 안에 있는, 우리가 잘 모르는 능력이다.
잘 몰라서 그렇지 흔히 볼 수는 있다. 등산에서도 누구나 경험한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던 정상이 가도 가도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네 다리 동물이 되어 엉금엉금 기어가지만 그토록 그리던 정상이 어느 순간 저 앞에 보이면 어떤가? 없던 힘이 갑자기 생겨 토끼처럼 올라가지 않는가.
다 죽어가던 선수들이 펄펄 뛰는 걸 이해하는 걸 넘어, 요즘 같은 하 수상한 세상을 사는 데 꼭 필요한 생존의 지혜일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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