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차려입은 두 여성이 기차 1등석 칸에 마주 앉아 있다. 고급스러운 회색 실크 드레스, 무릎 위에 올려 놓은 모자, 윤기 나는 갈색 머리 등 두 여성은 마치 거울을 보고 있는 것처럼 닮았다. 이들은 대체 누구고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19세기 영국 화가 오거스터스 레오폴드 에그는 시대상을 반영한 도덕적인 주제의 장르화에 능했다. ‘여행 동반자’(1862년·사진)는 그의 명성이 절정이던 46세 때 그렸다. 당시는 사회적 변화와 철도망의 확장으로 여성 혼자 또는 여성들끼리 기차 여행 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림 속 두 여성도 남성 보호자 없이 기차 여행 중이다. 창밖에는 프랑스 코트다쥐르의 망통 근처 여름 해안가 모습이 보인다. 실제로도 에그가 여행을 갔던 곳이다. 창문 블라인드에 매달린 술이 흔들리고 있어 기차가 달리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좁은 객차 안에 마주 앉은 두 사람은 외모만 보면 쌍둥이이거나 자매로 보인다. 그런데 서로 어떤 상호작용도 하지 않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차이도 많다. 오른쪽 여성은 고개를 숙인 채 책을 읽고 있다. 긴 머리는 단정하게 묶어 올렸고, 옆에는 꽃다발이 놓여 있다. 무릎 위 모자에 달린 붉은 깃털은 빳빳하고 깔끔하게 정돈돼 있다. 반면, 왼쪽 여성은 벽에 머리를 댄 채 졸고 있다. 머리는 느슨하게 풀렸고, 모자 깃털도 낡고 헤졌다. 장갑 낀 오른쪽 여성과 달리 맨손이고, 옆에는 꽃 대신 과일 바구니가 놓여 있다.
어쩌면 이 그림은 쌍둥이가 아니라, 한 사람이 가진 두 가지 측면을 묘사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사회가 강요하는 이상적인 여성상과 인간적인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여성의 모습으로 해석될 수 있다. 지적이고 교양 있는 여성과 먹고 자고 게으르고 싶은 본능을 한 화면 안에 동시에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여행 때만이라도 느슨해지길 바라서일까. 왼쪽 여성에게 왠지 더 공감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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