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5일부터 닷새 동안 이어진 압록강 유역 폭우로 신의주가 물에 잠겼다. 전문가들의 진단에 따르면 4000가구 이상이 침수됐고, 1000명 이상이 사망 혹은 실종된 60년 만의 대형 홍수로 추정된다고 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수해 지역을 시찰하며 주민 구출을 직접 지휘할 만큼 긴박한 상황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이 나도는 가운데 국가정보원이 후계자로 지목한 김주애가 5월 이후 80일 만에 신형 전술탄도미사일 무기체계 인계인수 기념식에 등장했다. 재난 대응과 권력 승계 모두에서 김 위원장의 곤궁(困窮)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北 국가대전략, 외교중심→군사중심 전환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이 김 위원장이 워싱턴으로 가는 길을 닫았다면, 2024년 평양 북-러 정상회담은 김 위원장이 모스크바로 가는 길을 열었다. 북한과 러시아는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을 체결하여 쌍무적 군사동맹 복원에 나섰다. 불과 5년 만에 북한은 북-미 화해를 기조로 하는 외교 중심의 국가대전략에서 북-러 동맹을 축으로 하는 군사 중심의 국가대전략으로 전회(轉回)한 셈이다.
북한 국가대전략의 전회에는 미국 대 중국의 동아시아 패권 경쟁 격화 및 나토 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이 있었다. 민주국가 대 독재국가의 대치 심화는 과거 냉전 질서를 복원하는 국제 체제적 효과를 낳았고, 진영 대치가 고착하는 국제 질서에서 북한은 외교 중심의 국가대전략을 군사 중심의 국가대전략으로 대체하는 선택에 나선 셈이다. 군사 중심 국가대전략은 2021년 조선노동당 제8차 당대회에서 ‘국방과학 발전 및 무기체계 개발 5개년 계획’ 채택을 통하여 국내적 기반을 마련했다. 당대회에서 김 위원장은 초대형 핵탄두, 극초음속 무기, 원자력 추진 잠수함, 정찰위성 개발을 선언하고 “이미 시작된 핵무력 건설을 중단 없이 강행 추진할 것”을 다짐했다. 김 위원장은 또한 “강권을 휘두르는 대국들에 대해서는 강대강으로 맞서는 전략”을 천명하여 외교 중심 국가대전략과의 단절도 뚜렷이 했다.
정권 생존이라는 국가대전략의 목적을 외교적 수단이 아니라 군사적 수단으로 달성하겠다는 김 위원장의 정책 전환은 2022년 ‘핵무력 정책’ 법령 제정으로 절정에 이른다. ‘핵무력 정책’ 법령의 중요한 함의 가운데 하나는 재래식 무기로 북한의 주권이 위협받을 경우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선언한 점이다. 남북한이 교전 상태가 되었을 때 미군의 개입을 차단하고 확전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북한은 선제적으로 전술핵무기를 사용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셈이다.
핵 사용 문턱을 낮추어 핵 억제 능력을 높이겠다는 ‘핵무력 정책’ 법령의 군사적 의지를 완성한 것은 김 위원장이 천명한 한반도의 ‘적대적 두 국가론’이라고 할 수 있다. 남북 관계가 ‘더 이상 동족 관계, 동질 관계가 아닌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이어야만 남쪽을 겨냥한 전술핵의 선제 사용 선언이 정당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올 1월 최고인민회의에서 김 위원장이 “대한민국은 불변의 주적”이고 “헌법에 있는 ‘자주·평화통일·민족대단결’이라는 표현도 삭제되어야 한다”며 김일성의 ‘조국통일 3대 원칙’마저 폐기하는 결정을 단행한 것 또한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의 적대적 두 국가론은 전술핵의 선제 사용을 내장한 북한의 핵태세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핵 통한 생존 위해 “적대적 두 국가” 천명
결국 북-러 군사동맹의 부활과 한반도 적대적 두 국가론의 등장은 모두 북한의 군사 중심 국가대전략에서 비롯한 억제력 제고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군사력 균형이 여전히 한반도 안정의 함수인 연유(緣由)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