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구찌 가방·해외 골프와 아파트 안전 바꾼 LH와 前官업체들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8월 9일 23시 24분



철근이 누락된 ‘순살 아파트’ 사태를 부른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이 전관(前官) 업체들로부터 금품과 골프 여행 등의 접대를 받고 특혜를 준 사실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LH의 한 현장감독 직원은 직무와 관련 있는 전관 업체로부터 상품권을 받아 명품 브랜드 구찌 가방을 사고, 회사 몰래 전관들과 해외 골프 여행을 다녀왔다. 이 직원은 출처 불명의 현금 수천만 원을 자기 계좌에 입금한 건 물론이고 감사 전날 휴대전화까지 바꾸며 증거를 인멸했다.

다른 현장감독 3명도 3년 동안 각각 30여 차례에 걸쳐 자재를 납품하는 전관 업체로부터 골프 접대를 받았다. 감사원이 현장 관리자 일부만 선별해 감사한 결과가 이 정도라니, LH 직원들과 퇴직자인 전관들의 유착이 얼마나 심각한지 짐작할 수 있다.

LH 직원들은 전관 업체들이 감점을 받을 만한 잘못을 저질러도 눈감아 줬고, 기준 미달에도 가점을 주며 수주가 가능하도록 도왔다. 예컨대 LH 퇴직자들이 무더기로 재취업한 설계업체들은 설계를 잘못해 공사비를 십수억 원씩 늘려도 벌점을 받지 않았다. 감리를 맡은 전관 업체는 공사가 끝나야 받을 수 있는 평가 항목에서 미리 우수 평가를 받았다.

이런 전관 카르텔 속에 2018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LH가 발주한 감리 용역의 90%, 설계 용역의 70%를 전관 업체들이 싹쓸이했다. 전관 특혜를 넘어선 ‘엘피아(LH+마피아)’ 구조가 또 한번 확인된 셈이다. LH는 철근 누락을 부른 ‘무량판 구조’와 관련해 설계 검수와 감독 업무도 소홀히 했다. 무량판 시공 경험이 없는 시공사에 시공 방법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고, 설계업체가 설계도면 작성을 하도급업체에 불법으로 맡겨도 몰랐다.

LH는 이번 감사 결과를 바탕으로 전관 특혜와 유착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하는 조직 쇄신에 나서야 한다. 설계와 시공, 감리 등 전 단계에 걸쳐 품질과 안전 수준을 높일 검증 장치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정부도 공공주택 시장에서 LH의 독점 구조를 깨고 민간을 참여시키겠다는 혁신 방안을 서둘러 실행에 옮겨야 한다. LH가 독점과 짬짜미를 통해 국민의 주거 안전과 복지를 위협하는 것을 더 이상 두고 봐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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