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국민 자동차 회사, 푸조(Peugeot)에서 1840년 이후 지금까지 소금과 후추 그라인더를 만든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 그라인더의 시작은 1810년 푸조를 이끌던 장피에르와 장프레데리크 푸조 형제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두(Doubs) 지역의 공장을 인수받게 되면서부터로, 이곳은 과거에 얇은 강철 스트립과 스프링을 생산하던 곳이었다.
두 형제는 1840년부터 이 공장에서 목재와 판금으로 제작된 최초의 커피 그라인더를 생산했고 커피, 설탕, 귀리 등 다양한 종자를 대량으로 분쇄하는 기계를 고안했는데 단순하지만 정확한 이 기계들의 메커니즘적인 핵심은 나선형으로 홈이 파인 두 개의 그라인더다. 단단하게 고정된 그라인더와 회전하며 통후추를 빻아서 잘게 만드는 그라인더가 서로 맞물려 돌아가게 하는 원리로 1874년에 최초의 테이블 페퍼 밀이 생산되었다. 푸조의 테크놀로지에는 습하거나 덩어리진 소금일지라도 막힐 위험 없이 균일한 분쇄를 얻을 수 있는 특허 시스템이 장착되어 있다.
푸조에서 만들어낸 테이블용 페퍼밀, 솔트밀 덕분에 사람들은 자신의 기호에 맞게 음식에 직접 후추와 소금을 갈아 넣어 먹기 시작했다. 이들이 소개된 초기에는 크리스털이나 백자 재질 같은 화려한 것들이 인기가 많았다. 이후 안전하고 단단한 나무 모델들이 뒤를 이었다. 푸조는 1889년에 45만 개의 커피 그라인더를 생산해내면서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올랐고, 1996년에 누적 판매량 100만 개를 달성했다. 아직도 자동 기어가 아닌 수동 기어를 고집하는 운전자가 많은 프랑스에서는 손으로 돌리는 수동식 페퍼밀과 솔트밀이 한결같은 사랑을 받고 있으며 몇 년 전부터 프랑스에 여행 온 우리나라 사람들 사이에서도 선물용 아이템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푸조는 일찍이 인간의 역사와 함께 걸어온 소금과 후추가 부패를 막고 보관성을 길게 할 뿐 아니라 육류와 생선의 맛을 위해 우리 식탁에 없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여겼다. 테이블 웨어라는 일상의 아이템을 통해 사람들의 뇌리에 자신들의 브랜드를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고 이를 자동차 마케팅과 자연스레 연결했다. 수년 전 샹젤리제에 있던 푸조의 자동차 전시장에서 최신 모델을 구입해 지인에게 선물해 준 기억이 난다. 흔한 에펠탑 열쇠고리 말고 음식을 먹을 때마다 사용하는 도구를 선물하면 이를 사용할 때마다 나를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타이어 회사, 미슐랭이 프랑스 구석구석의 레스토랑과 관광지를 소개한 미식계의 바이블, 미슐랭 가이드북을 출간한 것이 이 책의 독자로 하여금 좋은 장소들을 찾아다니며 타이어를 빨리 닳게 한다는 숨겨진 의도와도 비슷하다.
벼룩시장을 즐겨 찾는 나는 커다란 크기의 푸조 커피밀과 페퍼밀을 컬렉션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생산된 커피밀도 있고 유명한 테이블웨어 디자이너인 토마 바스티드가 디자인한 2006년 자바 모델 등이 작업실 한편에 모셔져 있다. 다음에는 가장 큰 1m 크기의 페퍼밀과 솔트밀을 구입할 예정이다. 정원에서 가족들과 바비큐 파티를 할 때 먼저 접시 위에 스테이크를 내 온 다음 이 거대한 도구의 등장과 동시에 거기에서 뿌려지는 소금과 후추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놀란 표정을 상상하며 모두가 함께 웃을 수 있는 행복한 순간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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