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유치원 입학을 앞뒀던 몇 년 전, 기본 원비에 방과후 활동비, 간식 및 식비, 차량비 등을 합해 월평균 220만 원이 드는 영어유치원과 월 40만 원 정도 비용의 일반 유치원을 놓고 장단점을 따지며 저울질하는 내게 한 선배가 건넨 말이다. 영어유치원은 시작일 뿐 초등, 중등, 고등을 거치며 한 달에 매달 수백만 원씩을 사교육비로 쓰게 될 거라는 예언(?)과 함께 사교육비 전쟁은 비로소 ‘대학 입시’로 종결된다고 했다.
농담이 아니었다.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가 발표한 지난해 사립 교육기관별 1인당 연평균 교육비 조사에 따르면 4년제 사립대 학생 1인당 연평균 등록금은 732만6000원으로, 영어유치원(2093만6000원), 사립초(918만 원), 국제중(1280만 원), 자사고(905만 원)보다도 쌌다. 왜일까. 특히 만 3∼5세 유아 대상 영어유치원은 사립대와 비교하면 연평균 교육비가 3배 정도 비싼데, 영어유치원의 교육 수준이 대학 교육에 비해 약 3배 정도 높은 경쟁력을 갖추기라도 한 걸까.
대학 등록금은 정부의 규제에 묶여 16년째 동결 상태다. 이는 2009년 교육부 장관이 경기 침체를 이유로 대학들에 등록금 인상을 하지 말아 달라고 한 요청에서 비롯됐다. 교육부는 등록금을 인상한 대학에 국가장학금Ⅱ 지원을 하지 않거나 재정지원 사업에서 배제하는 식으로 등록금 동결을 사실상 강요해왔다. 그렇다 보니 등록금 고지서에 찍히는 명목 등록금은 02학번 출신 기자가 20년 전 학교에 냈던 한 학기 등록금 300만 원 수준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실제로 올 4월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발표한 ‘대학정보공시 분석’에 따르면 일반대 인문사회계열 평균 1인당 연간 등록금은 600만3800원이었다.
20년간 물가가 오르는 동안 등록금만 제자리걸음 상태인 것은 정부가 유독 대학 등록금에 ‘민생’이란 정치적 명분을 걸어 연결 지은 결과다. 그 결과 본보가 최근에 보도(8월 8일자 A1·5면)한 대로 재정난으로 허리띠를 졸라맨 대학은 가르칠 교수조차 구할 수 없거나 해외 주요 대학과의 교환학생 프로그램 체결마저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사람이 자원’인 나라에서 인재를 낳는 대학 교육의 경쟁력이 16년째 하락 중인 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대학 등록금과 달리 교육계 ‘베블렌 효과’(비쌀수록 수요가 늘어나는 것)를 낳는 영어유치원에 입학하기 위해선 유아의 ‘영어 레벨테스트’ 통과 외에 ‘입금 전쟁’에서 승리해야 한다. 입금 전쟁은 영어유치원이 미리 공지한 시간에 입학금 계좌를 오픈하면 입금 선착순으로 수강 인원에 맞춰 등록 마감이 이뤄지는 걸 말한다. 심지어 1초 차로 희비가 엇갈리기도 한다.
유아 땐 서로 비싼 돈을 내서라도 원어민 영어교육을 받기 위해 분초를 다퉈 경쟁하고,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초중고, 심지어 일부는 재수생 시절까지 월평균 수백만 원대의 교육비를 쓰면서 왜 유독 대학 등록금 인상에 있어선 부정적 프레임을 벗지 못할까. 이제라도 대학 등록금을 현실화하고 국내 대학의 교육 경쟁력 강화를 위해 힘써야 한다. 결국 한국 사회의 가장 큰 성장 동력은 ‘인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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