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중 간 기술 패권 경쟁의 핵심은 첨단 기술의 중심이 되는 원천 지식과 정보를 확보하는 것이다. 원천 지식과 정보를 확보하려면 단순한 기술 개발을 넘어 기초연구에 대한 지속적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기초과학은 새로운 발견과 혁신의 출발점이자 첨단 기술 발전의 필수 기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고도의 반도체 제조 기술(7nm 이하 공정)에는 나노기술, 광학, 재료과학, 물리학, 화학 등 다양한 기초과학의 뒷받침이 필요하다.
올해 6월 27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선 2025년도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 배분 및 조정안을 확정했다. 2025년도 주요 연구개발(R&D) 예산은 24조8000억 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기초연구 분야 예산은 2023년, 2024년 대비 각각 약 14%, 12% 증액됐다. 이는 내년도 정부 총예산 예상 증가율(4%)과 비교할 때 3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자료와 정부 발표에 따르면 교육부는 내년도 학문 후속 세대 지원을 확대할 계획이다. 석박사 과정 학생에 대한 연구장려금 및 비전임교원 연구비 지원은 학령인구 감소, 의대 쏠림 등의 상황 속에서 우수한 인재들이 이공계 진학을 선택하고, 고급 인재의 해외 유출을 방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또 교육부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함께 우수 대학연구소를 세계 최고 수준의 혁신적 연구 성과를 창출하는 국가 대표 연구소(NRL2.0)로 육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기초연구의 주요 정부 부처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 공동으로 사업을 추진한다는 면에서 의미가 있다. 정부가 개별 연구과제의 단편적 지원을 넘어 연구과제 지원부터 관련 장비·시설, 인력까지 패키지로 지원하는 통합적 접근을 통해 기초연구를 더욱 강화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지역 R&D 생태계의 거점으로 대학연구소를 지원하는 교육부의 새로운 사업 ‘글로컬랩’도 주목할 만하다. 글로컬랩을 통해 지역특화 분야의 R&D뿐 아니라 기초·보호학문 및 융합 연구, 고급 연구인력 양성 등 다양한 연구를 자율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될 것이다. 또 이는 ‘대학중점연구소’의 전통을 더욱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기초연구 현장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연구의 다양성과 지원 정책의 지속성이다.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간과한 R&D 정책은 사상누각과 같고, 기술 패권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가 필수적이다.
국가의 혁신을 이끄는 최첨단 기술들은 오랜 기간의 기초연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인류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에 대항할 수 있도록 도와준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의 개발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현재 전 세계적 기술 패권의 우위에 있는 국가들은 모두 기초연구 강국이다. 한국도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에서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도약하기 위해선 다양한 분야의 기초연구에 대한 과감한 지원이 선결 요건일 것이다. 정부는 단기간의 성과를 측정하기 어렵다고 가치를 평가 절하하지 않길 바란다. 또 지난날 정부의 R&D 예산 삭감 실책이 기초연구 도약으로 전화위복 역할을 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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