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협치의 살얼음판을 걷는다. 7일 22대 국회 개원 70일 만에 만난 여야 정책위의장은 여야정 협의체를 구성하고 이견 없는 민생법안부터 우선 합의 처리하자고 한목소리를 냈다. 두 달이 넘도록 민생 법안 처리가 0건에 불과하다는 따가운 비판이 쏟아지자 뒤늦은 협치에 나선 것이다. 21대 국회 임기 막바지 야당이 ‘채 상병 특검법’을 단독 강행 처리하고 여당이 이에 맞서 국회 ‘보이콧’을 선언하면서 폐기된 법안들 위주다. 양육 의무를 다하지 않은 부모가 자녀의 유산을 상속받지 못하게 하는 일명 ‘구하라법’(민법 개정안)이 포함됐는데 20,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에서도 왜 처리를 미루는지 국민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여야가 속도 내서 빨리 입법하자”고 했던 바로 다음 날 여야정 협의체 구성과 관련해 딴소리가 나왔다. 더불어민주당은 ‘거부권 정국 해소’, ‘영수 회담’을 조건으로 달았다. 카메라 앞에서 웃으며 손을 맞잡고 협치의 시늉을 한 뒤 조건을 다는 구태의 반복이다. 국회의장과 법제사법위원장까지 국회 권력을 쥔 민주당은 마음만 먹으면 하루 안에 상임위→법사위→본회의에서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
정부 권력도 물러서지 않으면서 협치의 판이 깨질까 위태롭다. 여름휴가를 끝낸 윤석열 대통령이 12일 방송4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자 곧장 여야가 충돌했다. 민주당은 “정권 몰락의 시작”, “거부권 중독”이라며 즉각 법안을 재발의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 입법 폭주에 정쟁의 장이 됐다”고 날을 세웠다. 윤 대통령은 역시 민주당 주도로 통과한 전 국민 25만 원 지원법과 노란봉투법에도 거부권을 행사할 계획이다. 28일 예정된 본회의에서 거부권 행사 법안에 대한 재표결이 민생법안 처리와 함께 진행될 가능성이 거론되는데 정쟁의 불똥이 민생에 튀지 않을까 걱정이다. “쟁점 있는 법안도 함께 처리하는 투 트랙으로 가야 한다”는 민주당 입장도 변수다.
당장 ‘현안 청문회’도 뇌관이다. 국회 법사위,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 등에서 열린 현안 청문회에서 여야는 뒤엉켜 몸싸움을 벌이고 진상 규명 없이 일방적인 성토만 늘어놓는 상황이 반복됐다. 14일엔 ‘김영철 서울북부지검 차장검사 탄핵’ 청문회와 ‘방송 장악’ 청문회가 동시에 열린다. ‘거부권 정국’에 ‘청문회 정국’까지 덮치면 28일 본회의서 민생법안 처리 합의가 꼭 지켜진다는 보장도 없다.
역대 최고 성적을 기록한 올림픽 선수들은 국민의 박수를 받았다. 그런 선수를 향해 국민 세금으로 연금과 포상금을 주는 것이라면 이해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나오는 시대다. 실제로는 세금이 아닌 국민체육진흥기금에서 나오는 돈이라고 한다. 이런 국민 눈에 입법 활동을 내팽개친 국회의원이 어떻게 보이겠는가. 국회의원 연봉이 1억5690만 원이다.
민주당 소속 최민희 과방위원장은 최근 ‘방송장악’ 청문회에서 “국회의원이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노동 무임금이다. 세비 값은 해야 하기 때문에 과방위가 활발히 운영돼야 한다”고 했다. 현안 청문회의 필요성을 강조한 발언이지만 당장은 28일 본회의에서 민생법안 처리에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세비 값을 제대로 하려면 민생법안부터 챙기는 것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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