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출산… ‘개인주의’는 죄가 없다[허태균의 한국인의 心淵]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8월 14일 2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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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유명 골프선수 박세리 선수가 100억 원이 넘는 아버지의 빚을 갚아주고, 살던 집도 경매로 넘어갈 뻔했다는 얘기가 화제가 되었다. 아버지 때문에 박 선수의 인생이 너무 힘들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오래전에 박 선수 때문에 그 아버지의 인생도 바뀌었을지 모른다. 우리에게 세계적인 골프선수가 많은 이유는 어린 자식을 위해 젊은 나이에 직업도 그만두고 쫓아다니는 아버지와 그 생계를 책임지는 어머니가 다른 나라에는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다. 너무나 흔한 한국적인 모습이지만, 여기에 우리 저출산의 원인이 있다.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
한국의 출산율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지는 오래됐고 지금도 낮아지고 있다. 그 원인을 다양한 관점에서 논의하고 있지만, 거기서 빠지지 않는 단어 중 ‘개인주의’가 있다. 젊은 세대가 개인주의적이고, 그것이 낮은 출산율의 원인 중 하나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우리 사회가 개인주의화되고 있고, 젊은이들이 개인주의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개인주의’라는 단어가 원래 사회심리학 학술용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한국 사회가 개인주의로 바뀌고 있다는 믿음은 착시일 수 있다. 1997년부터 2017년까지 한국 사회에서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를 조사한 41개의 연구자료를 통합분석한 메타분석 논문을 보면 우리 사회는 전혀 개인주의적으로 바뀌지 않았다. 다만 나이가 젊을수록 개인주의적이라는 사실은 발견되었다. 그래서 기성세대들은 자신들보다 개인주의적인 젊은이들을 보며 세상이 개인주의로 변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경향은 과거에도 그랬고, 항상 그래왔다. 그러니 출산율이 너무나도 높았던 몇십 년 전에도 나이가 젊을수록 개인주의적이었던 것은 똑같았다는 의미이다.

그러니 개인주의를 저출산과 연결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진짜 우리의 저출산이 개인주의 때문이라면 최소한 수백 년 동안 원래 개인주의였던 서구 사회는 진작 멸종됐어야 하지 않을까? 개인주의는 개인을 독립적인 존재로 보고 개인적 정체성, 자유, 권리 등을 강조한다. 쉽게 얘기해서 사회적 환경 또는 타인과 영향을 주고받는 것을 상대적으로 싫어해서, 설사 부모와 자식 간에도 그 영향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한다는 뜻이다. 그들에게 부모 때문에 자식의 인생이 바뀌고 자식 때문에 부모의 인생이 바뀐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래서 오히려 그들의 출산율이 우리처럼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왜? 자식을 낳아서 그 자식의 인생을 굳이 바꾸려 하지도 않고, 자기 인생이 바뀌지 않을 정도만 키워서 독립시키면 되니까.

과연 한국의 젊은 부모들이 개인주의라서 자식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나? 우리의 출산율이 낮은 것은 개인주의라서가 아니라 오히려 개인주의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신들의 인생을 바꾸며 자신들을 키워낸 부모를 보며, 자신도 자식을 낳는다면 자신의 인생이 바뀔 정도로 자식의 인생을 바꿔줘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게 더 타당하다.

우리의 저출산을 개인주의로 연결하는 논리를 볼 때마다, 그 저출산 정책의 효과에 대한 기대가 낮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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