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플랫폼들의 비즈니스 모델은 대동소이하다. 그럴듯한 콘셉트의 홈페이지 또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만든 뒤 상품이나 서비스, 콘텐츠를 올려둔다. 그러고는 고객들을 끌어모은다. 무료 쿠폰, 할인 판매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다만 쌓이는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 서버를 늘리고, 사용자환경(UI)도 수시로 바꿔야 한다. 관건은 자금 수혈이다. 대규모 투자를 받아낸 곳은 버티고, 그렇지 못하면 문을 닫게 된다.
이커머스 업체 누구도 안심할 수 없다
충성고객 수와 객단가가 일정 수준을 넘기면 플랫폼의 태도는 달라진다. 광고비를 받기 시작하고 수수료나 구독료를 올린다. 구글과 유튜브, 메타(옛 페이스북)가 그랬다. 한국의 네이버, 카카오, 쿠팡, 배달의민족도 다르지 않다. 1990년대부터 바이블처럼 여겨져 온 성공 방식이었다.
미국 아마존과 중국 알리바바의 엄청난 성공은 국내 유통업계의 판도를 바꿔 놓았다. 지마켓, 11번가, 티몬, 위메프 같은 전자상거래 업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이들의 가파른 성장에 대형마트와 동네슈퍼, 전통시장은 직격타를 맞았다.
결국 오프라인 유통기업들도 온라인으로 손을 뻗기 시작했다. 신세계는 2018년 ‘SSG닷컴’을 론칭한 데 이어 2021년에는 지마켓을 3조5000억 원이라는 거금에 인수했다. 롯데도 2020년 롯데백화점, 롯데마트, 롯데슈퍼, 롯데홈쇼핑 등 7개 계열사의 온·오프라인 데이터를 통합해 ‘롯데온’을 출범시켰다. 사실 지금까지는 실적이 신통치 않았다. 유통업계의 한 인사는 “오프라인과 온라인 사업은 언어 자체가 다르다”는 말로 유통 대기업의 온라인 사업 부진을 설명했다. 대기업 진출로 이커머스 시장 내 경쟁만 더 치열해지게 됐다.
그러다 미정산 사태가 터졌다. 6월 활성이용자(MAU)가 합계 870만 명에 육박했던 티몬과 위메프는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본사 앞에는 환불을 요구하는 소비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뤘고, 정산금을 받지 못한 소상공인과 중소기업들은 거리로 나섰다.
제2의 티몬·위메프가 나오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본보가 국내 주요 이커머스 업체 10곳의 재무 상태를 조사했더니 완전자본잠식에 빠진 기업이 4곳이나 됐다. 함께 분석한 회계사는 나머지 기업 중에도 현금 흐름이 원활하지 않은 곳들이 있다고 했다. 이커머스 시장은 소비자가 동시에 여러 플랫폼을 쓰는 ‘멀티호밍’이 특히 심하다. 무한 가격 경쟁이 벌어지면서 누구도 이익을 낼 수 없는 구조가 됐다. 이를 두고 “이커머스 플랫폼의 숙명”(임일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이라고도 한다.
그나마 시장이 성장할 때는 괜찮았다. 이익을 내지 못해도 파이가 커지다 보니 생존은 가능했다. 하지만 성장세가 꺾인 데다 중국 이커머스 기업들마저 국내 시장을 넘보는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오프라인 유통업계에서도 확인된 것처럼 ‘빅3’ 외에는 살아남기 힘들 수도 있다”(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다.
적자기업, 투자 못받으면 곧바로 위기
이커머스 시장에선 ‘계획된 적자’란 표현을 흔히들 쓴다. 공격적으로 고객을 모으려면 적자경영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규모 투자를 따박따박 받아낼 때의 얘기다. 시장 환경이 달라지면 투자 유치 계획은 언제든 삐걱댈 수 있다. 적자 기업들에 이는 곧 유동성 문제를 의미한다. 티몬·위메프 사태에서 보듯 대형 이커머스 업체가 무너지면 수십만 명의 피해자가 양산된다.
재무건전성은 뒤로한 채 덩치 키우기에만 집중해 온 기업들은 이제 방향타를 조정할 시점이 왔다. 30년 묵은 비즈니스 성공 방식이 앞으로도 유효할 거란 기대는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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