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못 미더운 전기차, 더 못 미더운 전기차 정책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8월 14일 23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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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잇단 전기차 화재로 전기차 공포증이 확산되자 정부와 지자체가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실효성과 일관성이 떨어져 혼란을 키우고 있다. 대전 대구 광주 등 5개 광역지자체는 청사 내 지하 주차장에 있는 전기차 충전소를 없애고 지상으로 옮기는 방안을 추진 중인데, 지하 화재 시 소방차 진입이 안 돼 진화가 어렵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지만 민간 영역으로 확대하기엔 어려움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요즘 아파트는 주차장이 대부분 지하에 있고 지상 주차장이 있는 구축 아파트들도 공간이 크게 부족하다. 빌딩이 밀집한 도심 역시 지상에 전기차용 주차나 충전 공간을 마련하기 어렵다. 특히 민간에선 정부의 충전기 의무설치 기준에 맞춰 큰돈을 들여 충전소를 설치했는데 이제 와 지하 주차 공간과 충전시설을 지상으로 옮기라고 하면 혼선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섣부른 전기차 지상화 정책은 전기차 지하 주차 문제를 두고 최근 확산되고 있는 주민 갈등만 더욱 부추길 수 있다.

서울시가 배터리 충전율 90% 이하인 전기차만 아파트 지하 주차장 출입을 허용하기로 한 것을 두고도 “근거가 뭐냐” “전기차 사라고 할 땐 언제고 이젠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한다” 등 논란이 많다. 게다가 차주가 충전율을 90% 이하로 맞추려면 충전기를 아무리 오래 꽂아놔도 배터리 용량이 일정 수준까지만 차도록 해주는 전용 모뎀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 대부분의 충전시설에는 이 장치가 없다. 정부 대책인 배터리 제조사 공개 역시 필요하긴 하지만 특정 제조사가 무조건 더 안전하다고 보기 어려울뿐더러 배터리 관리만 잘한다고 화재가 다 예방되는 것도 아니다. 어떤 환경에서 전기차 화재가 나더라도 진압이 가능하도록 스프링클러 같은 화재 설비를 확보하는 게 더 실효성 있는 대안이다.

정부는 그동안 보조금을 주며 전기차를 늘리려고만 했지 안전 확보는 뒤로 미뤄왔다. 충전소도 늘리기만 했을 뿐 소방 설비 규정은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 그러다 전기차 화재가 매년 두 배씩 급증하고 최근 인천 아파트 화재까지 겹쳐 불안 여론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부랴부랴 설익은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정부 정책이 신뢰를 주지 못하면 안 그래도 흔들리고 있는 전기차 시장이 더 큰 불확실성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전기차#전기차 화재#전기차 정책#주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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