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화가[이준식의 한시 한 수]〈277〉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8월 15일 22시 51분



나와 헤어져 어디론가 간다던 위언(韋偃), 무적의 자기 그림 솜씨를 내가 좋아한단 걸 알고
장난스레 몽당붓 잡고 붉은 준마를 그리자, 한순간에 천리마가 동쪽 벽에 나타났네.
하나는 풀을 뜯고 하나는 울음 우는데, 순식간에 천리 길이 저들의 발굽 아래 놓일 기세.
위태로운 시국에 어찌하면 이런 말을 구해서, 나와 함께 생사를 같이할 수 있을는지?
(韋侯別我有所適, 知我憐渠畫無敵. 戱拈禿筆掃驊騮, 欻見騏驎出東壁. 一匹齕草一匹嘶, 坐見千里當霜蹄. 時危安得眞致此, 與人同生亦同死.)

―‘위언이 벽에 그려준 말에 부치는 노래’(제벽상위언화마가·題壁上韋偃畵馬歌) 두보(杜甫·712∼770)


자기 그림을 좋아하는 시인에게 화가는 이별의 선물로 벽에다 말 그림을 남긴다. 그러자 시인은 화필의 기세와 화폭에 담긴 준마의 역동적 기운에 감복한다. 생동감 있게 벽 위에 등장한 준마 두 필. 지금은 한가로이 풀을 뜯거나 힝힝대고 있지만 저들이야말로 단숨에 천 리를 내달릴 수 있는 천리마. 이런 그림을 장난치듯, 그것도 끝이 나달나달해진 몽당붓으로 그려내다니 그 묘필(妙筆)에 대한 시인의 감흥이 오죽했으랴. 그림 속 준마의 기세와 함께 ‘위태로운 시국에 이런 말을 구해서 생사를 같이하고 싶다’는 시인의 우국지정 또한 유별스럽다.

시인이 사천성 성도(成都)의 초당에 머물던 시절, 이때 만난 이가 말과 노송 그림으로 명성을 떨치던 화가 위언이었다. 두보는 위언의 그림을 예찬한 제화시(題畫詩·그림을 소재로 지은 시)를 여러 편 남겼는데 이 시는 그중의 하나다.

#시인#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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