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강원 고성으로 휴가를 다녀왔다. 바다에서 물놀이를 하다가 멸치만큼 작은 물고기들을 제법 잡았다. “알록달록 노랗네. 라면에 넣어 끓여줄까?” 두 딸은 환호했다. 생긴 게 예뻐 자세히 들여다보다가 검색했더니 복어 새끼였다. 요단강 건널 뻔했다는 생각에 식은땀이 흘렀다. 나중에 찾아보니 새끼 복어는 독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복어가 원래 동해에서 잡혔나. 찾아보니 본디 따뜻한 물을 좋아해 제주 근해에서 잡혔는데 언제부턴가 동해에서도 잡히기 시작했다고 한다. 난류가 북상하며 복어가 올라왔고, 그 자리에 있던 오징어는 밀려났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5, 6마리에 1만 원가량 하던 오징어회는 이제 몇 마리 얹어 한 판 정도 먹으려면 “지역 군수, 의원은 돼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홍어는 난류에 쫓겨 북상했다.
찬물을 좋아하는 홍어는 원래 흑산도에서 많이 잡혔으나 지금은 약 140km 북쪽인 군산 앞바다에서 가장 많이 잡힌다. 군산 홍어가 전국 홍어 판매량의 절반을 차지한다. 어디서든 많이 잡히기만 하면 소비자는 딱히 불만이 없다. 기자는 극도로 지친 날이면 밤늦게 귀가해 냉장고에 보관해 놓은 삭힌 홍어 몇 점을 접시에 던다. 불 꺼진 주방에서 숨죽여 막걸리랑 먹으면 다시 출근 의지가 생긴다. 군산산(産)이든 흑산도산이든 칠레산이든 상관 없다. 그런데 지역 어민은 생계가 달린 문제다. 어획량을 둘러싼 다툼이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온난화가 인간 사이 다툼으로 옮겨붙은 사례다.
어릴 때 물리게 먹었던 명태의 경우 이제 국산은 자취를 감췄다. 생물로 끓여 먹고 얼려 먹고 튀겨 먹고 말려 먹고 말린 뒤 때리고 찢어 먹던 국민 생선은 요즘 어딜 가나 ‘러시아산’이다. 1980년대만 해도 매년 20만∼30만 t이 잡혔고 고성 등 항구마다 명태잡이 배가 가득했지만 지금은 수온 변화를 견디다 못해 북상했다. 40여 년 사이 동해 주요 어종이 명태와 도루묵에서 오징어와 청어로, 다시 복어와 방어로 바뀌고 있다.
우리 바다와 식탁에서 벌어지는 일은 전 지구적 현상의 축소판이다. 2018년 미국 국립과학원회보 논문에 따르면 산업화 이전인 1880년대와 비교했을 때 지구 평균 온도가 2도 오르면 온난기(Warm Period)에 진입할 수 있다고 한다. 최근 140여 년간의 온도 상승 폭이 약 1도였으니, 이제 앞으로 1도 남았다. 에어컨 리모컨으로 1, 2도쯤은 왔다 갔다 하니 별 감이 안 오겠지만 지구 기온이 평균 2도 이상 오르면 모든 생물 종(種)의 절반가량은 멸종 위기에 처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인간이 먹는 것들의 생존 문제이자 인간의 생존 문제다.
여전히 우리 정부도, 국민도 기후변화와 온난화 문제는 절실하지 않은 분위기다. 북극에서 빙하가 녹고 아프리카에서 강이 마르는 먼 문제로 여긴다. 어린이집이 무더기로 문 닫고 서울 초등학교가 폐교되는 걸 본 뒤에야 “출산율 저하가 문제”라고 호들갑 떠는 것처럼 온난화와 기후변화 역시 임박해서야 그럴 듯하다. 그런데 그때는 이미 돌이키기 어려운 시점이지 않을까. 지금 무슨 대책을 내놔도 사람들이 애를 안 낳는 것처럼 말이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서울은 최근 118년 중 가장 긴 열대야를 기록했다. 에어컨 없이는 밤에 아이들을 재울 수 없는 날이 길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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